시론 ·평론·시감상

시인이여 詩人이여 / 이방주

洪 海 里 2018. 6. 26. 14:25

시인이여 詩人이여

- 詩丸

 

 洪 海 里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동천사)

 


  <감상>


없이 살라는 데 시는 써 무엇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시인이여 詩人이여」라는 제목부터 이색적이다. 시란 자연과 인생

에 대한 감흥, 사상들을 운율韻律에 맞춰 표현한 글이다. 사람들을 감

동시키고 삶을 성찰하게 하는 데는 성서나 불경 같은 경전, 두꺼운 철

학책보다 때로는 짧은 시 한 수가 효과적일 수가 있다. 그래서

시인은 속세에서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식이 셋 있어도 모두 기업가로 만들려고 하는 세태에, 시인은 세

속에 물들지 않고 남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고귀한 사람

이다. 성직자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덧

없음을 이야기하고 우주의 복음福音을 전한다. 철학자는 아니지만 세

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이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제

시하기도 한다.

  시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김소월, 조지훈, 박인환이

다. 멋진 분들이다. 모두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주옥 같은 시작詩作

을 통하여 어느 성직자, 철학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

향을 준 시인들이다.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걑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아시아 국가 중에 한 · 중 · 일 세 나라는 모두 시를 사랑하는 문화 국

가들이다. 세 나라 국민들은 모두 시를 사랑한다.

  신년을 맞이한 감흥을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로 짓는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난다. 또한, 중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는 한시가 매우 생활화되어 자기의 심경을 시작詩作을 통해 상대방에

전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멋지게 보인다.

  우리나라도 많은 문화유산을 통해 시문학詩文學이 당시의 지식인들

에게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경치를 산수화로만 남긴 것

이 아니고 시로써도 남겼으며 벼슬을 하거나 낙향을 하는 등 인생에

큰 고비를 맞을 때도 그 심경을 시로 지어 남겼다. 그러나 현대에 이

르러서 우리 사회는 옛멋은 잊어버리고 너무 효율성만 중요시하고 있

지 않은가 한다.

  20~30년 전만 하여도 축시祝詩라는 것이 잇어 어떤 기념 행사에서

축하의 뜻을 담아 시를 낭독하는 순서가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사라

지고 말았다. 또, 신년을 맞이하거나 가족의 특별한 기념일에 자작시

自作詩를 지어 낭독하거나 기념 팸플릿 등에 게재하기도 하였는데 요

즈음은 보기가 어려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만큼 시가 우리 일상생활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시인이 산속에 숨어 살고, 옥 같은 시를 가슴속에 새겨 두기만 하고,

시 쓰는 일이 부질없어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메말라지겠는가. 그

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이 시 쓰는 일이 부질없다고

절필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그렇지, 아무리 세상살이가 시 쓰기에 마땅치 않아도 시인은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써서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도 주는 멘토 역할을 계속해 줄 것이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사는 맛이 없을 것이고, 화가가 그림

을 그리지 못한다면 어떤 형벌보다 힘든 일일 것이다. 시인은 더할 것

이다.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한다면 스스로 얼마나 절망하겠는가. 그래

서 시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고귀한 업을 가진 사람이다.


- 명시 산책 / 이방주 지음『시와 함께 걷는 세상』(2015, 북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