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30일 수요일, 맑음


내 눈은 늘 밝을 줄 알았습니다

내 귀는 늘 환할 줄 알았습니다

내 이빨은 언제나 튼튼하리라 믿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희미해진 눈

먹먹해진 귀

흔들리는 이빨

걷잡을 수 없이 나를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무릎 삭아내리고

허리뼈 또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옆에는 아픈 것도 모르는 아내가 웃고 있습니다

덕분에 나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봅니다

이제는 현미경으로도 세상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인 아내 덕분입니다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 洪海里의「착각  - 치매행致梅行 · 15」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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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해리 시인의 착각이라는 시 그대로다. 맨눈으로 안경없이 무엇을 보기가 이리도 힘들어질 줄은 생각도 안 했다. 작년까지도 2.0에 가까운 시력,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2가 나왔으니까... 우리 집 남자 셋 다, 보스코(그는 고1부터 안경을 썼단다)에 뒤이어 빵기(초딩 때부터 안경)가 안경을 쓰고 빵고(중딩 1에 안경)마저 안경 없으면 헤매더라도 남의 일로만 알았다.


  “함양한의원이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휴가에 들어간다고 해서 오래 기다릴 요량으로 갔더니만 그렇게나 북적거리다 조금 전에 환자들이 갔단다. 벌써 두 주째 침을 맞고도 별로 차도가 없으나 마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백내장을 수술해준 양의도 세 달째 놓고 보는 중인데....  비록 헛발질이라도 좋고 침술 덕분에 쌍까풀 수술을 않고 쳐진 눈꺼풀이 올라갔으면 할 뿐이다.


  그래도 홍해리 시인은 치매 걸린 아내를 두고 탄식만 하는 대신 감사하다면서 아내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살아간다. 내가 뭐라고 해도 흔들림 없이 자기 일을 하면서 나를 그냥 방치하다 시피 하는 보스코! 아마도 그는 이렇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므로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볼 능력은 전무할 게다.


  그는 아주 단순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해를 못할 때가 많다. “저 좋은 머리로 왜 이런 것도 생각을 못하나?” 싶었는데 얼마 전 읽은 박현웅의 여덟 단어에 남자를, 따라서 보스코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몇 가지 들어 있었다  남자(철학교수라도)와 개는 "복잡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


         2대 집사 손총각네가 열호, 혜원, 다온 세 식구 이름으로 보스코 생일에 

         카드와 풀런닝을 선물로 보내왔다. 우린 사람들에게 무척 사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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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수십년지기 친구와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도 잘 사냐?” “미친놈!” “먹자.” “마셔”... 이런 몇 마디로 그친다. 보스코와 수복씨가 만나면 딱 그렇다. 그런데 여자는 40분간 통화를 하고서도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로 끝낸다. 그러니 남자들이 여자를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리라. 나만 해도 밥상을 들고 문지방을 넘어오면서 보스코에게 건넬 말 열두 가지를 생각해내는데 보스코는 발설할 수 있는 언어가 겨우  "응" "응", 그것마저도 건성으로 하는 게 전부 같다(물론 청중 앞에서 강연대에 올라 서면 얘기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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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인의 집을 찾아가며 저자 박현웅은 쥬스나 한 병 사가지.”가 고작이었는데 부인은 지난 번 그 집을 잠깐 가봤더니 물잔은 미카사 크리스탈이었고, 로열 달튼 찻잔에 허브티를 내놓았고, 평소 옷 입고 다닌 스타일이나 앤티크한 집안 분위기를 생각해 봤을 때 작고 세련된 도자기 장식 같은 걸 사가는 게 좋겠어.”라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인류사가 끝나기 전에 과연 남자가 여자만큼 진화할 가능성이 있을까?” 묻고서 없다!”고 단언한다. 그 대목이 나오자 보스코가 나도 그 결론에 한 표!“라고 한다. 8월말이면 정년퇴직하는 교장 선생 우리 막내 시동생도 한 표 더 던지고 남을 남자다. "보고만 있어도 속 터져 죽겠어요."하는 막내동서의 푸념을 내가 늘 듣는 터이니까.


  읍에서 돌아오며 물까치를 쫓으러 빤짝이판을 스무 장 더 사왔다. 저녁을 먹고서 보스코가 배밭에 내려가 마저 달았다. 부디 까치들이 놀라서 배밭놀이를 좀 삼가주면 좋으련만... 되레 반사판에 비치는 얼굴을 보고 화장이라도 하겠답시고 암까치들이 더 모여들지나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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