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무화과

洪 海 里 2019. 1. 24. 11:08

무화과無花果

 

洪 海 里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벙어리처녀 애 뱄다고 애 먹이지 말고
울지 않는 새 울리려고 안달 마라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열매 속에선 꽃들이 난리가 아니다
질펀한 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며
무진무진 애쓰는 혼뜬 사내 하나 있다.


 -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 에로스적 사랑은 무치無恥와 염치廉恥 사이에서 펼쳐지는 감각의 작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은 은일할 수도 있고, 아주 격렬한 유혹의 기표일 수도 있다. 성-자연이든 문명화된 성이든 상관없이, 성은 그 자체로 생-세계를 살아낸 삶의 한 부분이다. 생로병사의 무한순환을 이룩해가는 에로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종의 역사를 실현시키는 성. 문제는 성 자체가 발현하는 방식에 발생하지는 않는다. 진짜 문제는 성 행위 속에 수반되는 쾌락과 그 쾌락을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한다. 조르주 바따이유가 『에로티즘』에서 성과 성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사태를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던가. 성은 성행위 당사자에게는 죽음을 전제로 한 일종의 모험적 사태를, 종의 역사를 실현하는 다음 세대에게는 빛이 아닌가. 성은 죽음이면서 삶이고, 삶이면서 죽음인 양가적 실체가 아닌가. 아니 성은 쾌락의 패러독스 위에 기술되는 존재의 마법이 아닌가.

  주이상스적 쾌락의 성공적 실현만이 다음 세대를 배태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특권이다. 그것은 성-자연의 적극적 실현이자, 건강한 주체만이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현시킨다. 하여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는 것이고, 성-자연이 부여한 소명의 실현이다. 물론 홍해리는 무화과의 은밀한 사랑방식을 시말 속에 육화시켜 인간의 성적 사태를 교묘히 이접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에로스는 무화과 꽃대 속에 숨어 핀 꽃과 같은 사랑이다. 은두隱頭 꽃대 속으로 벌을 유혹하여 정받이하는 은일한 사랑을 몽상하고 있다. 어둠을 빛나게 하는 “혼뜬 사내”와 “그녀”의 합일. 눈빛의 교환 혹은 오나니를 주고받는 부드러운 손길. 유혹하고 유혹받기. 사랑은 은일함 속에 불타는 정열적인 합일이다.

  허나 무화과꽃은 죽음 위에 기술되는 사랑학을 실현하고 있다. 비록 시인이 그 사랑의 실체를 “은밀”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실 그 은밀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꿀과 화미로 벌을 유혹하는 죽음의 향기이다. 은두 꽃대 안은 여성의 자궁 안에서 죽는 남성이거나 쾌락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시인이 그 사랑의 발현 방식을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말하지만, 어찌 그것이 달콤하기만 하겠는가. 꽃대 안에서 혼이 떠 죽은 벌, 두려워 벌벌 떠는 벌의 죽음 제의는 무화과가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사랑방식이다. 은밀하게 유혹하여 정받이 한 자를 죽이기.

- 김석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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