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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시편立春詩篇

洪 海 里 2019. 5. 4. 06:43

                                            입춘시편立春詩篇


*그림은 http://cafe.daum.net/yesarts에서 옮김.

 

 

입춘立春

洪 海 里

 

 


설악엔 눈꽃이 황홀하고
제주엔 이미 매화가 피었다 한다.

남이 잘 되는 꼴 못 본다고
동장군의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촛불도 꺼질 때, 반짝! 하듯
꽃이란 찰나의 유성으로 지고 말지만,

그 속에 잠든 영혼을 위하여
겨우내 부푼 양수가 터지고 있다.
                                                     - 2006. 2. 6. 고대병원에서.

 

 

 

  • * 2006.02.07. 05:56.
    지난 여름의 삼복더위를 고대 구로병원에서 시원하게 지내고
    이번에는 입춘 추위를 그곳에서 따뜻하게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낮엔 병실 문을 다 열어놓고 지내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밖이 무척 춥다고 해서 한번 나가봤습니다.
    그러나 그 추위 속에 이미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 * 2006.02.11. 11:15
    바람이 찬 듯해도 내린 눈은 녹고 있지요.

    그 바람 속에 이미 봄의 기미가 느껴집니다.
    혹한을 이긴 송백은 꿋꿋하지만, 우리집 마당의 검은대나무[烏竹]은 금년에도 이파리가 다 얼어 허옇게 말랐습니다.

    그러나 봄이 무르익으면 죽순이 죽죽! 솟아오를 걸 생각하고 견뎌냅니다.

    곧 꽃소식이 화사하게 전해질 겁니다.

     

    * 2012. 01. 09. (월)

    엊그제 이미 소한도 지났고 21일이면 대한이고 내달 4일이 입춘이다.

    입춘을 기다리며 추위를 녹인다.

    몇 해 전에 쓴 '입춘 추위'를 다시 올려 놓고 봄 소식을 기다려 본다.

     

  • * 2013. 2. 4. (월)

    오늘이 입춘인데 새벽에 문을 열어 보니 눈이 한 자나 쌓였다.

    어제 두 번이나 눈을 쓸었다.

    우이동 골짜기에 눈이 이렇게 엄청나게 쌓인 것은 이곳에 산 지 40년 만인 듯하다.

    올해는 두루두루 풍년이 들려나 보다.

    시인들에게는 시풍년이 들기를 바라고 싶다.

     

    마당의 눈을 어느 정도 치우고 큰길까지 길을 내고 들어오니 온몸이 눈목욕[雪浴]을 한 듯 땀에 젖었다.

    기분은 시원하고 상쾌하기 그지없다.

    우이동솔밭공원의 천 그루 소나무나 만나러 나가야겠다.


    * 2014. 2. 4.(화)

    그간 포근하던 날씨가 어제부터 기온이 급강하, 오늘은 영하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바로 입춘 추위의 맛을 보여 주고자 하는 자연의 뜻이다.
    입춘을 맞아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서 대길하고 만사 형통하시길 빈다.


    * 2019. 2. 3.(日)

    내일이 섣달그믐이자 입춘이다.

    겨우내 가물더니 마침내 비가 내리고 있다.

    한겨울의 반가운 빗소리를 듣는다.

    모레는 설날!

    설레는 날이 아닌 설렘이 없는 날이다.
           - 隱山.

     

     

     

     

    입춘立春

     

    洪 海 里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새들도 솜털깃을 털어내며

    아름다운 전쟁 준비에 한창,

    문득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타인도 정다운,

    죄 될 것이 없는

    그리운 남쪽 나라

    멀리서 오는 이의 기침소리가 선다.

     

     

    한잔술 · 立春

    洪 海 里


    새싹을 끌어올리는
    잔잔한 햇살의 울력,
    침묵의 계절은 가고
    말씀으로 빚은 유정한 소식 없어도
    기막힌 일 아닌가
    아른아른 아지랑이 서로 홀려
    살아 있는 것들 떠나고 돌아오고,
    한잔술에 기운을 돋우고 나면
    폭군의 광기와 집착도 별것 아냐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따뜻한 남쪽만 그리워하랴
    어차피 삶이란 비수의 양면,
    보라
    지금 여기 머리 내미는
    싹싹한 자연을!

    (2005)

     


    * 福壽草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 꽃말 :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永遠的幸福)'이고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悲傷的回憶)'이며,

    영명은 pheasant's eye(꿩의 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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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홍해리의 '입춘' 중에서)

     매서운 북서풍이 잦아들고 해의 화살이 쏟아지면 대지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강물이, 나무가 봄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이즈음에는 온기(溫氣)를 가진 모든 것들에 연분을 느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곡식 여신의 딸을 지옥의 신이 보쌈해 갔다. 딸을 잃은 슬픔에 곡식 신이 분노했다. 모든 식물이 말라 죽기 시작했고, 가축들도 떼 지어 죽어나갔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른 신들이 나섰다. 여섯달 동안은 딸이 엄마와 살도록 하고, 나머지 여섯달은 지옥 신과 사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때부터 딸이 땅으로 돌아오는 봄이면 죽어있던 만물이 살아난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입춘 무렵에 '죽은 자를 위한 제의(祭儀)'를 벌인다. 죽은 자를 불렀다가 되돌려 보내는 의식이다. 죽은 자를 표상하는 젊은이가 망자(亡者)의 춤을 춘다. 그 다음 청년을 마을 밖으로 쫓아낸다. 추위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망자를 밖으로 끌어내 쫓아내는 상징 의식이다. 따뜻함과 밝음의 봄이 오기를 소망하는 제의라 할 수 있다.

     우리네에게도 입춘 즈음에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를 외치며 콩을 던지는 풍습이 전해온다. 죽음을 가져온 겨울 귀신은 물러가고 봄의 생명이 풍성한 축복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문화권에서 봄은 생명력이며, 밝음과 따뜻함이며, 풍성한 소망과 축복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대보름날(2월 9일)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다. 이날만은 추위로, 경제 한파로 옹송그렸던 우리 모두의 가슴이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 조선일보 (200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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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성의 날씨바라기>

    - 스포츠서울 2012. 2. 3. (금)

     

     

    입춘을 맞는 마음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

    깜짝 놀란 강물이 /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

    연초록 깃발을 꽃으며 /

    시동을 걸고 있다'

                   - 홍해리의 '입춘' 중에서

     

      입춘(立春)이 되면 북서의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해의 화살이 쏟아지면서 대지는 다시 살아난다. 강물이, 나무가, 새가 봄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이즈음에는 온기(溫氣)를 가진 모든 것들에 연분을 느껴도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아니다. 여전히 대지는 차갑고 눈이 덮여 있으며 바람은 칼날같이 매섭다.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라는 '춘래불사춘'이라는 옛 말이 생각날 정도다.

      중국의 전한(前漢) 말기 때다. 절세미인으로 불리던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의 왕에게 시집갔다. 흉노를 달래기 위한 화친 혼인으로 한나라에게는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훗날 시인은 모래로 뒤덮인 흉노 땅에서 힘들게 살았을 왕소군을 노래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몽고지역의 모래땅에 화초와 풀이 없을 테니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올 겨울은 가장 추워야 할 소한 대한을 지난 후 봄이 온다는 입춘 앞에 가장 추웠다. 2일 영하 17.1도를 기록했는데 서울지방의 경우 83년만의 혹한 타이기록이다. 우리나라만 추운 것은 아니다. 동유럽과 러시아는 혹한으로 수백명이 죽었다. 일본에 내린 4m의 폭설과 한파는 기록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늦추위와 폭설이 지구촌을 몸살 앓게 만든다. 이젠 추위 예측도 하기 어려운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후절기상으로는 연초를 설날이 아닌 입춘으로 본다. 입춘부터 우수까지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는데 초후에는 동풍이 불어서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중후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혹한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봄이 땅 밑에서 기지개를 켜는 때이다.

    예전에는 입춘 때면 대문에 '시화세풍 입춘대길(時和歲豊 立春大吉)'을 써 붙였다. 입춘을 맞아 나라 안이 태평하고 풍년이 들고 좋은 일만 있으라는 기원이다. 올해 세계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축복 글처럼 우리나라 경제가 최고의 실적을 기록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