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연필로 쓰는 詩 / 금강

洪 海 里 2020. 3. 13. 17:59

연필로 쓰는 詩

 

洪 海

 


이슥한 밤

정성스레 연필을 깎을 때

창밖에 눈 내리는 소리

연필을 꼭꼭 눌러 시를 쓰면

눈길을 밟고 다가오는

정갈한 영혼 하나

하늘이 뿌리는 사리 같은 눈

발바닥으로 문신을 박듯

사각사각 사각사각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어느새 희번하니 동이 트고

냉수 한 대접의 새벽녘

드디어,

하얀 종이 위에 현신하는

눈매 서늘한 한 편의 詩.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감상>

  눈이 내려야 하네. 국꾹 눌러 적은 마음 그 발길에 놓여야 하니.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 창문에 닿아야 하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필사한 그리움의 거리를 이어야 하니.


  백지로 덮인 마을에 사는 우리는 육필의 고백으로 만나야지.

연필로 적으면 정갈한 몸 그대로 내어주는 것 같아. 때 묻은

생각 다 덜어지고 알뜰한 말 한마디 남을 것 같아.


  이제 세상 이목의 눈을 닫네. 한결같은 필체를 보이려고 옷을

벗고 냉수 한 대접으로 새벽을 씻네. 나를 새기는지 당신을

새기는지 알 수 없이, 연필로 엎드리는 일 경건하네.

- 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