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죽순시학竹筍詩學 / 금강

洪 海 里 2020. 3. 13. 06:54

죽순시학竹筍詩學

 

洪 海 里

 


죽순은 겨우내 제 몸속에 탑을 짓는다

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물탑이다

봄도 늦은 다음 푸른 비가 내려야 대나무는

드디어 한 층씩 올려 탑을 이룬다

때맞게 꾀꼬리가 뒷산에 와

아침부터 허공중에 금빛 노래를 풀면

대나무는 칸칸마다

질 때도 필 때처럼 선연한

동백꽃이나 능소화 같은 색깔의 소리를 품어

드디어 빼어난 소리꾼이 된다.

 

숨어 사는 시인이 시환詩丸을 물에 띄우듯

대나무는 임자를 만나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니

산조니 정악이니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

몇 차례 겨울을 지나 대나무가 되고 난 연후의 일이다.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감상>

마디마디 맺힌 말

봄이 익도록 기다리다가

한 번은 꿀꺽 삼키다가

더는 참을 수 없이

푸른 비 더듬어 쌓은 것이

소리의 탑이라니.


허공에 풀린 새의 노래

순에 묻힌 색깔대로

칸칸이 내겨 우리다가

온몸에 배어 꽃처럼 피고 지는.


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렇다. 아직 열리지 않은 소리의 의중을 헤아린다.

오래 품은 소리의 자국에 구명을 내고 싶다가도 순이 나무로 자란 연유를

먼저 들여다본다.

  시를 읽는 마음이 그렇다. 순을 적다가 무심코 한자漢字 자판을 눌러보니

'죽순' 옆에 '악기를 다는 틀'이 놓였다. 은밀하게 담긴 공명을 알아보는

임자를 기다리고 있다.

 - 금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