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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아르 마네 /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洪 海 里 2020. 12. 10. 06:34

                                                          힘든 하루의 얼굴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0-12-10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1882년.

 

에두아르 마네는 단 한 번도 인상주의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인상주의자들의 리더였다. 생전에는 파리 미술계의 조롱과 비난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사후엔 ‘인상주의의 아버지’이자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추앙받았다. 마네는 평생 9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그림이 그가 남긴 최후의 걸작이다.

그림 속 배경은 파리 최고의 사교장이었던 ‘폴리베르제르’ 카바레다. 춤과 오페라, 서커스 공연 외에도 매춘으로 유명한 고급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림 모델은 쉬종이란 여성으로 실제 이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이다. 가슴까지 파인 몸에 딱 붙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펜던트와 코르사주로 멋을 냈다. 예쁘고 세련된 외모로 고객들에게 인기 있던 바텐더였다. 뒤에 있는 거울은 시끌벅적한 클럽 내부 광경을 보여준다. 잘 차려입은 파리지앵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서 술을 마시며 서커스를 즐기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공중 그네를 타고 있는 곡예사의 두 발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거울에 비친 쉬종의 뒷모습과 함께 실크해트를 쓴 신사가 보인다. 거울 속 인물들의 각도와 크기가 부자연스러운데, 이는 화가가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장면을 왜곡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쉬종의 표정이다. 고객을 응대하는 종업원의 얼굴치고는 너무도 무표정하다. 친절하게 미소 지을 에너지도 없어 보인다. 그저 힘든 노동의 하루를 견디고 있는 피로한 도시 노동자의 모습일 뿐이다. 술을 마신 탓인지, 실내의 열기 탓인지 두 볼은 붉게 상기됐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 역시 건강 악화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쉬종은 화가를 대신해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힘든가요? 나도 힘들어요.” 19세기 파리 여인의 표정에 새삼 공감하게 되는 건 우리의 삶 역시 충분히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 동아일보 202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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