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 그리움을 위하여

洪 海 里 2005. 11. 4. 04:41

 

 

그리움을 위하여

 

홍해리(洪海里)
 

  서로 스쳐 지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너를
  보고 불러도 들리지 않는 너를
  허망한 이 거리에서
  이 모래틈에서
  창백한 이마를 날리고 섰는 너를 위하여,

  그림자도 없이 흔들리며 돌아오는 오늘밤은 시를 쓸 것
만 같다 어두운 밤을 몇몇이 어우러져 막소주 몇 잔에 서
대문 네거리 하늘은 더 높아 보이고 둥두럿이 떠오른 저
달도 하늘의 술잔에 젖었는지 뿌연 달무리를 안고 있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이 허전한 가슴으로 피가 도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네 속에 있는 나를
  내 속에 있는 너를
  우린 벌써 박살을 냈다.

  아득한 나의 목소리
  아득한 너의 목소리
  아득한 우리 목소리.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썩은 사과 냄새에 취해
  나는 내 그림자도 잃고 헤매임이여.

  흙벽에 등을 대고 듣던
  새벽녘 선한 공기를 찍는 까치소리
  한낮 솔숲의 뻐꾸기 울음
  그믐밤 칠흑빛 소쩍새 울음.

  보리푸름 위 종달새 밝은 봄빛과
  삘기풀 찔레꽃의 평활 위하여
  이 묵은 시간 거리의 떠남을 위하여.

 

- 시집『우리들의 말』(1977)



 


  (시문학 1976.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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