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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紀行詩와 日誌 - 洪海里 詩集 『淸別』

洪 海 里 2005. 11. 16. 04:12

<문학평론> 紀行詩와 日誌
                      -洪海里 詩集 『淸別』

                                        李永傑(시인. 한국외대 영어과 교수)

 『淸別』은 1987년의 『대추꽃 초록빛』(東泉社)에 이은 여덟 번째의 洪海里 시집이다. 그의 시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써 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의 시의 변천과 지속성을 헤아리게 되지만, 이 점을 자세히 고찰하려면 많은 지면과 공력이 요청된다. 이 글에서는, 『대추꽃 초록빛』에 대한 서평을 근년에 썼던 만큼 『대추꽃 초록빛』의 어떤 점이 『淸別』에 이어지느가를 지적함으로써 새 시집의 내용과 성취점을 헤아리는 단서로 삼고자 한다.
 『대추꽃 초록빛』에 대한 서평 「反省的인 삶」에서 <존재에 대한 그리움, 반성적인 삶, 진리를 향한 虛心>이 洪海里 詩의 일관된 가치관임을 지적한 바 있다.(진단시 11집 『꽃상여 노래』 민족문화사, 1987년, 103-115면 참조). 古典과 古事를 다루는 시편과 蘭과 梅花에 쏠리는 전통적 관심을 주목한 후 인생론적 자세와 함께 日常事를 다루는 시편의 가능성을 언급하였었는데, 『淸別』의 主調와 성취는 일상사의 시적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는 점에 있다.
 제1부에 수록된 남해안 紀行詩 30편과 제3부의 연작 「牛耳洞日誌」 21편은 洪海里 씨의 自傳이라 할 만큼 일상적 체험에 밀착해 있다. 제2부에 수록된 38편은 기존 관심의 연장이며 洪海里 시의 다양성에 기여하지만, 이번 시집의 특색은 記行詩와 日誌의 점층적 감흥이 일상 소재의 집중적 취급에 연유한다는 점이다.
 牛耳洞에 거주하며 다년간 蘭을 찾아 남해안을 두루 답사해 온 생활은 자연을 벗하는 풍류의 생활이며, 자연 풍물을 즐겨 다루는 시인의 관심은 이번 시집의 일상성에 이어지는 만큼 『淸別』의 새로운 특색은 기존 세계의 자연스러운 전개인 셈이다.
 古典과 古事의 취급에 노력하는 진단시 동인과 우이동의 삶과 환경을 노래하는 牛耳文友會에서 함께 활동하는 洪海里 詩의 확대는 본래적 관심과 문단 활동의 자극이 서로 어울려 進境을 이룬다. 요컨대, 친화적 시인들과의 교류는 洪海里 시의 본래적 관심을 보강했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성향을 뚜렷이 발전시키는 자극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제2부에 수록된 人物詩 연작은 기존의 자연 친화적 서정과 함께 우이동 文友들을 소묘한 것이다.)
 기행시와 일지의 내용 및 연관성을 살핀 후 제2부의 여러 작품을 고찰함으로써 洪海里 시의 전체적 성격과 통일성과 다양성이 드러나리라 믿는다.
 남해안의 풍물을 다룬 기행시 30편은 20편으로 구성된 「甫吉島詩篇」 외에는 독립된 短詩로 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효과는 連作詩의 점층성과 다양성을 상기시킨다. 대체로 비슷한 길이의 시편으로 여행의 모티프와 자연친화와 바다의 속성을 다각적으로 다루는 까닭이다.
 1987년의 『대추꽃 초록빛』을 살피며 근년의 洪海理 시의 문체적 성향을 <언어의 검약>과 <점층적 리듬>으로 규정했지만, 이번 시집의 기행시도 언어의 검약과 점층적 리듬을 거느린 평명한 문체가 주목된다.  이전 시집에 드러난 <존재에의 그리움>과 <虛心>의 경지도 이번 시집의 主潮를 이룬다.  이전 시집에 대해 <안정, 이상, 평화, 휴식>을 기리는 마음이 지배적 기풍임을 지적했지만, 이번 시집의 기행시의 세계도 동일한 志向의 연장이라 하겠다. 
 욕심과 산란함에 대조되는 虛心과 이것의 求道的 성격과 존재 및 理想에 대한 그리움은 완전한 성취일 수는 없고 부단한 志向인 만큼 수시로 孤寂과 비애의 정이 동반된다. 자연친화의 정과 멋을 다루는 순간에도 < 떠도는 나그네>의 旅愁가 뒤따른다. 다년간 답사하는 남해안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감회가 인다. 친화적인 바다 앞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우이동 日誌의 한 구절 <집도 절도 없이 / 떠도는 내 마음.>이 시사하듯이 풍류의 세계는 표랑의 정회도 포함하므로 존재에 대한 그리움은 < 안정, 이상, 평화, 휴식>을 향한 지속적 탐구와 갈증으로 남는 셈이다. 또 한편, 자연친화의 멋을 다루는 기행시의 서정성(개인성)은 세속의 욕심과 산란함에 대조되는 구도적 虛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世事에 시달리는 만인의 共鳴을 얻을 수 있다.
 서정시는 개인의 정회를 다루면서도 보편적 호소력을 꾀하기에 洪海里 씨의 기행시가 詩人의 소묘로 시작됨은 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작 「甫吉島詩篇·1」은 「시인」을 副題로 삼았다.

   바다에 오면
   바다를 품고
   바다를 길러 
   바다가 되고 

   섬에 오면 
   섬을 품고 
   섬을 길러
   섬이 되는 사람.

 언어의 검약과 점층적 리듬이 주목되는 이 시는 평명성과 함께 암시성을 지닌다. 전체적 자연친화의 모티프는 즉각적으로 파악되지만, 바다와 섬에 오는 행위가 우연한 계기의 것인지 또는 합목적적인 것인지를 헤아리게 하는 동시에, 바다와 섬을 기른다는 표현은 擬人的 연상과 더불어 바다가 함축하는 바를 오랜 기간 명상하는 이의 심경을 드러낸다. 시는 존재의 명상을 통한 친숙화 과정이라 할 때 시적 표현은 대상과의 同一化라는 측면을 지닌다.
 바다에 오는 행위의 합목적성은 「甫吉島詩篇·19」「바다에 갈 때는」의 제목 자체에도 암시된다. < 떠나기 전 / 모두 / 버리고 가라>는 修辭的 어조에 이어 다음과 같은 結句를 마련한다.

   누구나 
   바다 앞에서는
   청맹과니
   귀머거리
   행복한 사람.

 바다의 크기와 영구성은 인간의 한계를 실감케 하며, 我執과 편견과 욕심을 버린 겸허한 마음만이 淸淨한 심경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를 <행복>이라 한 역설은 바다의 크기와 신비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는 이의 法悅인 셈이다.
 「甫吉島詩篇」의 제5호 「바다읽기」는 대상과의 합일을 다룬 「시인」의 경우와는 다른 심경을 그렸다. <바다를 읽고 싶어 그 앞에 섰더니 / 바다가 먼저 나를 읽어 버렸다>고 한 후 <갑옷을 입고 있는 그 앞에 서서 / 나는 마음을 풀 수가 없었다.>는 자성으로 끝맺는다. 이 역시 상식적인 눈으로는 잡히지 않는 바다의 신비에 관련해 인간의 한계를 토로한 것이다.
 「甫吉島詩篇·14」인 「바다 앞에서는」은 바다의 크기와 신비에 대조되는 인간의 한계를 또 다른 각도에서 다루었다.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울어야 할 필요가 없다
   질투할 필요가 없다
   쓸쓸해 할 필요가 없다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
           (중략)
   체념할 필요가 없다
   증오할 필요가 없다
   죽어야 할 필요가 없다

 바다의 원초적 모습과 장구한 존재는 유한한 인생에 대조되는 초월의 표상으로 비친다. 이러한 초월성 앞에서는 인간의 정념과 생사 역시 사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의 유구한 존재성은 어떤 시점에서는 인간의 화복에 무관심한 중립적인 세력으로 비치지만, 대자연에 귀의하려는 동양의 전통에서는 인사의 상대성을 깨달음으로써 얻는 안정과 평화와 휴식의 원천이 된다.
 人事의 상대성을 강조한 「바다 앞에서는」에 대조해 「甫吉島詩篇·9」인 「바다에 오면」은 자연의 유익한 영향력을 노래한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린다
  
   눈에 띄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모두가 다 시요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다 시인이니
 
   눈먼 사람 바다로 오라
   귀먹은 사람 바다로 오라

   이곳에 오면
   온전히 살아 있음이 부끄럽다.

 이곳의 詩想은 虛心의 적극적 가치를 유념한 것으로, 앞에서 살핀 구절 <누구나 바다 앞에서는 / 청맹과니 / 귀머거리 / 행복한 사람.>의 시상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표면적 역설의 근저에는 동일한 깨달음이 깔려 있다. 일상적 自我의 습관을 벗어버린 순수한 마음의 바탕은 새로운 開眼이요 각성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시>와 <시인>으로 보게 되는 심경은 순수한 마음의 회복이 부여하는 쇄신된 감수성의 결과이다. 여기에 대자연이 안겨 주는 유익한 영향이 있다. 결구의 <온전히 살아 있음이 부끄럽다.>라는 일견 애매한 진술도 문맥을 찬찬히 헤아리면 이전의 <온전>할 수만은 없었던 삶을 반성하는 심회로 해석된다. 또, 특정한 환경이 안겨 주는 개안과 각성이 영속적일 수 없다는 깨달음도 부끄러움을 줄 것이다. 생활인은, 대부분의 시간 일상적 타성의 무게 아래에 놓이는 까닭이다.
 바다의 신비와 친화성의 모티프와 함께 기행시에는 <그리움>의 모티프를 다룬 작품들도 있다. 그리움은 존재와 理想을 향한 것임을 이미 지적했지만, 「그리움」(「비진도에서」)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다의 신비와 친화성의 모티프를 理想의 모티프와 융합시킨다.

   이승 저승 따로 없는 바다에서는
   물너울 너훌너훌 그 앞에서는
   숨기고 폭로하고 대들고 용서하고
   울면서 웃어 주고 죽으며 사는 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운 사람
   시작과 끝 따로 없는 바다에 와서
   그 사람 생각나네 그리워지네.

 <이승 저승 따로 없는>과 <사랑도 미움도 매한가진데>는 바다의 초월성과 人事의 상대성을 대조한 구절이다. 후속되는 구절 <숨기고 폭로하고 대들고 용서하고 / 울면서 웃어 주고 죽으며 사는 사람>은 역설을 기조로 파악한 人間像이다. 이러한 인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운 사람>이라 하며 여기에 다시 <시작과 끝 따로 없는 바다>를 병치시킨다.
 이 시에 제시된 인간상은 흔히 상반되는 충동에 사로잡히면서도 애써 관용과 自制의 정신을 지향하는 인물의 모습이다. 어떤 특정한 인물을 회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시인 자신이 추구하는 윤리적 理想일 수도 있겠다. <울면서 웃어 주고 죽으며 사는 사람>은 人事의 상대성을 깨닫고 일정한 상황이나 정념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바다의 초월성은 이처럼 世事의 기반(羈絆)에서 자아를 해방시키려 애쓰는 적극적 인물의 귀중함을 상기시킨 것이다. 제2부에 수록된 哀歌 「꽃상여」에도 유사한 역설을 담은 구절이 보인다.

   한 세상 한없이 살지 못하고
   살아서 죽은 삶을 사는 척하다
   죽어 사는 삶을 꽃 피우랴.

 이 구절에도 유사한 삶의 애상과 함께 집착하지 않는 정신의 고귀함이 암시되어 있다.
 자연친화의 정에는 시간적 인생의 성격 때문에 旅愁와 비애의 정이 따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존재와 理想에 대한 그리움은 부단한 과정과 함께 해소키 어려운 갈증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감회를 다룬 「甫吉島詩篇·7」인 「 別나루」는 제목 자체가 인생을 만남과 떠남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나이든 나루치
   보이지 않고
   시간마다
   노화에서 보길로 배가 뜬다
 
   노화에서 
   팔을 펼치면
   손끝에 닿는
   보길도

   그 끝 어디쯤
   그리움 하나
   푸르다 못해 검어진
   그리움 하나 있을까

   검정 고무신 신고
   돌아서는 바다
   쓸쓸한 
   어깨.

 <나이든 나루치>는 유한한 삶의 성격을 암시하고 <시간마다> 목적지로 가는 배가 뜨지만, 그리움의 대상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의 行先이라는 점이 <팔을 펼치면 손끝에 닿는>의 역설로 강조되어 있다. 후속되는 연의 인상적 비유 <푸르다 못해 검어진 / 그리움>은 理想의 간절함을 드러내고, 結句의 의인화된 바다의 이미지도 도달키 어려운 理想的 경지에 대한 감회를 짙게 표현한다.
 남해안 기행시의 일곱 편을 통해 자연환경을 맥락으로 한 인생론적 감회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虛心의 적극적인 가치와 존재와 이상에의 그리움의 모티프는 여타의 기행시에도 다채롭게 變奏된다. 이미 살펴본 중심 모티프와 함께 기행시의 다채로움은 예시한 관점의 변화와 說話와 인물과 寫像 등의 요소를 다채롭게 활용하는 전반적 기법에 있다(다양한 방법의 활용은 기행시 외에도 이번 시집 전체에 발견된다).
 두 개의 추가적 사례를 살펴보자. 「甫吉島詩篇」제2호 「쑥돌 해안」은 寫像主義的 작품이다.

   까만 등을 
   반짝이며
   짜그락 짜그락

   우는 개구리.

   사부작 사부작
   겨울바다를
   차갑게 차갑게

   우는 개구리.

 쑥돌 해안의 현장감과 이에 반응하는 이의 심회가 신속히 전달된다, 시각 이미지와 의성음과 의태어가 어울려 靜中動의 분위기와 존재의 孤寂의 감회를 환기한다.
 「甫吉島詩篇」 제3호 「동백꽃」은 인물과 서경과 심경을 배합시켜 단일한 효과를 빚어 낸다.

   기름기 잘잘 도는 섬 여인네
   그녀의 정념보다 더 뜨거운 불

   동백꽃이 피우는 불길은
   기름 도는 초록빛

   그 연기가 바다로 바다로 가서
   섬을 만들고

   섬마다 동백나무 불을 지펴서
   떠도는 나그네 가슴 녹이네.

 원근 섬의 초록과 섬 여인의 야성미는 생명의 원초적 활력과 소박함으로 나그네의 쇄신된 감성에 강열히 호소한다.

 연작 「牛耳洞日誌」는 2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남해안 기행시를 쓴 같은 기간에 쓴 작품들이기에 虛心과 그리움의 모티프와 더불어 바다의 심상을 활용하는 구절도 산견된다. 이 점은 일정한 소재의 집중적 취급과 함께 이번 시집의 통일성에 기여한다. 日誌의 제1호는 앞에서 인용한 대로 <집도 절도 없이/떠도는 내 마음>에 표랑의 모티프를 도입한 후, 철새의 南行을 다룬 「겨울 여행」으로 시집의 大尾를 삼음으로써 일정한 기간 동안 추구한 주요 관심에 週期的 모형을 부여한다.
 연작시의 이상은 일정한 소재를 다각적으로 취급함으로써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얻는 일이다. 21편으로 구성된 日誌의 한 편 한 편을 음미하며 전체적 연관을 살피면, 어떤 작품의 모티프는 여타의 중심 모티프로부터 다소 유리된 인상을 준다. 예컨대, 제15호 「다시 봄날에」와 16호 「사랑에게」의 정회는 우이동의 자연과 삶을 다룬 여타 작품의 집중적 효과와는 좀 異質的인 것으로 느껴진다.
 「牛耳洞日誌」에 대체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표랑의 모티프에 연관된 바다의 심상이다. 제2호 「출판 기념회」는 李生珍 시인의 자연 친화적 세계에 관련해 다음과 같은 비유와 정경을 제시한다.

   백운대 등대탑에 서서
   서울바다를 막막히 막막히 바라본다
   뱃고동소리 들리지 않고
   부둣가 갯내음도 풍기지 않는
   그러나 사람들이 쪽배가 되어
   흔들리는 망망대해
   백운대섬의 등대지기인 그
   뿌연 바다로 바다로 무적을 울리고 섰다.

 남해안 기행시에서 자연친화의 정을 다룰 때에, 두고 온 도회의 삶이 은연히 대조되었듯이, 서울 주변에 놓인 우이동에서는 한 시인의 자연 친화적 세계가 도시인에게 줄 수 있는 감화력을 강조한다. 시인은 <무적>을 울리며 <쪽배가 되어/흔들리는> 이들을 인도하는 등대지기이다.

 우이동의 신록을 다룬 11호에도 <햇살에 전신을 드러내는/연하디 연한 초록 알갱이/우이동 뒷산이 바다에 묻혔다/밤이면 초록빛 파돗소리>라 함으로써 기행시에서 취급한 평화와 휴식의 모티프를 變奏한다. 제20호 「바다에서 돌아오니」에는 여행에서 귀가한 시인의 마음을 가득 채운 바다의 이미지를 소묘한다.
 이 시집의 大尾를 장식하는 「겨울 여행」도, 南行하는 겨울 철새의 이미지로 한랭한 현실을 벗어나 따스함과 자유와 淸淨이 있는 理想界로 향하는 심회를 표현한다.

   우리는 바다에 가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갈매기는 마음대로 하늘을 가르고
   바다는 수정 물빛 자랑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끼룩 끼이룩
   남으로 남으로 날아간다.

 남해의 자연풍광의 인상을 멀리서 회상하는 심경을 그린 이 구절은 간절한 향수로 채색된 자연풍광을 理想界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존재와 理想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牛耳洞日誌」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우이동의 우호적 환경에서 성찰한 개인적 삶과 자연 친화적 심회와 인생론적 명상과 문명비판적 視覺이다. 
 「牛耳洞日誌·9」인 「이곳으로 오라」의 제목은 도회생활의 복잡성과 자연에 밀착한 삶의 순수성을 대조하는 田園詩의 전형적 방법을 암시한다. 자연의 本源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삶은 존재 망각의 삶이다.

   모래 속에서 헤매는 이들
   달을 잃은 사람들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
   별을 잃어버린 사람들……

 생명의 본원과 이상을 망각하고 소외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자연에 근접한 우이동의 생활은 생기를 회복시켜 주고 감수성을 진작시켜 주는 사례가 된다. 이것은 우이동의 예외적 환경을 미화하는 일로 단정할 것이 아니라, 몸소 우이동에서 살며 생명의 본원의 귀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이의 감회로 보아야 한다. <솔바람에 귀 트고 눈 씻고/진달래 철쭉으로 소년>이 되는 이는 잠시 번잡한 世事로부터 벗어나 정신의 자유와 생명의 원초적 신비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사람이다. 
 「기쁨 한 닢」(제7호)은 우이동에 사는 은혜와 보람을 잔잔히 노래한다.

   백암 연봉 병풍 아래
   포근히 모여 사는 사람들
   아침이면 떠나갔다
   저녁이면 찾아드는 정다운 마을
   버스표 한 닢으로
   모든 것을 내어준다
   푸른 숲도 맑은 계류도
   산자락의 푸짐한 샅도
   희고 푸른 바위산의 높이까지도.

 <버스표 한 닢으로/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자연 환경의 은혜를 적실히 느끼며 사는 이의 감회이다. 환경과의 조화로운 관계는 사람에게 활기와 보람과 행복감을 안겨 준다. <백암 연봉 병풍>, <산자락의 푸짐한 샅>, <희고 푸른 바위산의 높이> 등은 우이동 풍광의 확호한 묘사인 동시에 환경의 너그러움과 고매(高邁)한 氣像을 기리는 마음도 드러낸다
 「백운대 인수봉을 보며」(제6호)도 자연과 인간의 삶을 대조하며 靜觀과 虛心의 순간을 다룬다.

   나무가 나무로 서서 숲을 이루고
   바위가 비로소 바위로 서는
   이곳에 서면
   저 시장의 개미 떼 벌 떼
   그들의 눈썹 위로
   새들을 날리고 서서
   천 마디 말 만 마디의 말
   침묵으로 이루는
   바위 아닌 산을 본다
   산이 아닌 거인을 본다.

 자연의 전체성 속에 자리잡은 물상의 本然을 묵상한 후 이를 훤소한 都心과 대조한다. 다시, <바위 아닌 산 >, <산이 아닌 거인>은 사람들의 소모적인 열정에 대조되는 자연의 영속성과 의연함과 초월성을 강조한다.
「山行」(제 4 호)은 消耗的 열정에 대조되는 閑裕의 시간과 개인적 삶의 反省을 다룬 작품이다. <나무 아래 / 바위 위에 앉아 / 나무늘보처럼 / 마음을 늘어뜨린다. >라고 , 역설적 어조로 근면에 대조되는 표면적 나태에  유념하지만, 이어 <마음은 녹아 바람이 되고 / 몸은 녹아 물이 되어 흐른다. >고 함으로써 虛心의 경지를 그린다. 그리고는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내가 무엇인가>등의 본질적 의문을 제기한 후 < 다시 내릴 길을 따라 / 참나무 마른 잎의 어눌한 말소리>를 듣는 깨달음에 이른다. 자연의 유구한 질서 속에서 생명의 週期를 겸허히 묵상한 작품이다.
 제3호인 「어느 날」 은 自傳的 회고와 생활감정을 다루며 자연의 理法에 삶의 哀歡을 비추어 본다.
 
   머잖아 이 마을에 눈이 내리면 
   백운대 인수봉이 한결 높으리 
   바람소리 더욱 높아 귀를 잃고 
   구름장에 팔을 휘휘 내저으며 
   비인 가슴으로 노래하리라.

 일말의 애수와 함께 삶의 변전을 수용하는 견인적 자세가 있다. <비인 가슴>은 집착심을 버림으로써 얻는 정신의 여유와 꿋꿋함이다. 
 남해안 紀行詩와 「牛耳洞日誌」는 자연친화와 인생론적 명상에서 공통적 관심을 보여 주는 補足的 작품들이다. 바다와 섬의 풍물과 산과 산기슭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룬 기행시와 일지는 다채로움과 통일성으로 흡족감을 주며, 평명한 문체에 담신 思惟와 예지도 읽을수록 깊은 감회를 준다.

 洪海里 시집들을 두루 읽어 온 이는 남해안 기행시와 「牛耳洞日誌」가 『淸別』의 압권을 이룸을 인정케 될 것이다. 한 시집에는 여러 관심 중 두드러진 관심이 발견되는데, 개별 시집의 특성과 성취점은 후자에 말미암는다. 또 한편, 여러 관심은 후속되는 시집들 속에 다양한 비례로 전개될 수 있다. 『대추꽃 초록빛』(1987년)에는 古典과 古事와 민속을 집중적으로 다룬 詩篇이 큰 비중을 차지했었는데, 『淸別』의 제2부에도 같은 관심이 「장승」「茶話」「異說 놀부論」「꽃상여」 등에 반영된다.
 이런 전통적 소재의 취급에도 물론 시대적 관심과 개인적 정회와 오늘의 삶의 성찰이 따른다. 전통적 소재의 취급과 함께 제2부에는 기존의 관심인 蘭과 梅花 및 여러 화초의 소묘가 있고 牛文會 동인들의 면모를 다룬 「人物詩」연작이 있다. 전통 및 자연풍물의 취급과 자연 친화적 시인들의 소묘는 한국적 삶의 여러 양상에 대한 통일된 관심이지만, 각각의 강조점과 기법에 따라 나누어 살피게 된다. 화초를 다룬 시편들은 기법면에서는 寫像主義的이다.
 「蘭詩·2」인 「寒蘭」을 인용한다.

   그녀는 혼자다
   늘 호젓하다
   
   소나무 아래서나
   창가에서나

   달밤에 비수
   그 푸른 가슴

   창 안에 어리는 별빛
   모두어 놓고

   그녀는 호젓하다
   늘 혼자다

 <그녀는 혼자다 / 늘 호젓하다>로 시작되어 결구에는 순서를 바꾸어 <그녀는 호젓하다 / 늘 혼자다>라고 함으로써 다소 역설적인 울림을 빚어낸다. <寒蘭>의 개별적 기풍을 공간과 시간을 옮겨가며 靜觀하는 화자의 심경을 거친 후에는 <늘 혼자다>라는 진술은 역설적 함축성을 지니게 된다. <창 안에 어리는 별빛 / 모두어 놓고>는, <한란>의 고매함이 자연의 전체성 속에서 그 특성을 발휘한다는 깨달음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寫象主義的 작품은 인생론적 연관을 암시할 수 있으나 대체로는 즉물묘사에 기운다. 같은 스케치풍인 경우에도 인물시에는 인생론적 정회가 두드러진다. 「人物詩·4」(辛甲善)를 살펴보자.

   아침에 까치소리 저녁 소쩍새
   봄날에는 진달래 가을 샐비아
   단출하니 식솔들 거느리노니
   그대여 세상 천지 막막한 기슭
   막걸리에 도토리묵 한 상 차려라
   골짜기마다 금침 은침 꽂아 놓고
   쓸쓸함에도 한잔 그리움에도 한잔.

 자연 친화적 삶의 풍류를 다루면서도 단출한 <식솔>, <세상 천지 막막한 기슭>에 생활인의 시름이 느껴진다. 하루와 계절의 리듬이 이윽고 일상적 삶의 모티프에 이어짐으로써, 자연 친화적 풍류의 순간이 <단출>할 수만은 없는 삶의 무게로부터의 일시적 해방임을 헤아리게 한다. 결구의 <금침> <은침>의 세목과 후속되는 의인법도 풍류의 멋과 함께 온전히 초탈할 수는 없는 삶의 사연을 진작케 한다.
 寫象과 인생론적 심회를 결합시킨 사례도 있다. 「화순 기행」이 그것이다.
 
   진달래 버는 남녘땅
   뱀들도 눈을 뜨고
   난초꽃 무더기 속에서 수런거렸다
   쑥 냉이 냄새가 묻어나는
   바람을 타고 들려 오는 노랫소리
   높은 음계로 계집애들이 불러댔다
   청미래덩굴과 가시나무 사이로
   토끼똥도 보이고
   멧돼지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앞산 양지쪽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겨울을 넘기고 놓은 목숨을 묻고
   마알간 잔디의 실핏줄을 밟으며 밟으며
   울고 있었다
   노랑나비 날개 위로
   봄날이 기울고 있었다.

 전반에 남녘땅의 새봄과 들녘의 정경을 찬찬히 서술한 후, 후반에는 <앞산 양지쪽>에서 진행되는 장례를 소묘한다. <겨울을 넘기고 놓은 목숨>은 새봄의 활동에 대조되어 哀傷感을 환기시키고, <마알간 잔디의 실핏줄>은 死別을 슬퍼하는 혈연의 정과 또다시 푸르름을 찾을 <잔디>의 생명을 대조케 한다. <노랑나비 날개 위로> 기우는 봄날도 계절의 리듬과 생명의 週期를 헤아리게 하며 여운을 빚는다.
 「아버님 여의옵고」의 부제가 달린 「꽃상여」는 민속과 개인적 정회가 결합된 작품이다. 49행의 길이를 3부로 나눈 「꽃상여」에는 망자와 유족의 심회를 대변하며 生死의 의미를 묵상하는 第三者的 시점의 화자가 주목된다. 두 번째 단락을 인용한다.
 
   육신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이승의 마지막 잔치상 받고
   너훌너훌 춤추며 간다.
   구만리 장천
   하늘나라
   홀홀 단신으로
   하얀 수건 흔들며 간다.
   살내 젖어 스민 권속
   손 흔들어 이별하고
   하늘다리 건너서
   은하수를 지나서
   간다 간다
   끝도 없이 한도 없이
   알량한 울음소리
   다 떨쳐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무명으로
   무명으로 간다.
   이승에서 못한 사랑
   저승에서 꽃피우랴.

 <살내 젖어 스민 권속>, <알량한 울음소리> 등에 혈연의 짙은 정과 이를 초극하려는 의지간의 긴장이 느껴지고 <이승의 마지막 잔치상>, <이승에서 못한 사랑> 등에 삶의 애환이 간절히 표현되어 있다. 불가피한 죽음의 수용은 이승의 미진함과 한을 저승에서 해소하려는 염원에 의해 위로와 정화의 정을 안겨 준다.
 32행의 「시간과 죽음」은 死境을 헤매던 이의 시점에서 회복된 삶과 생명의 귀중함을 노래한 작품으로 시점과 문체에서 「꽃상여」와 대조된다.

   서울의 하늘이 저리 푸르른지 나는 아지 못했다
   저 어두운 콘크리트숲도 바퀴벌레의 음흉함도 유쾌하다
   다시 보는 모습들과 손길의 살가움이여
   이제 나도 스스로 바다를 이루어 저 해를 품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 하리라
   도시의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하루의 빨간 심장을 본다
   이 밤은 가고 날은 밝으리라
   나도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숲을 지키리라.

 위기와 고난을 겪은 이에게는 범상히 누렸던 일상과 목숨이 큰 은혜로 실감된다. <하루의 빨간 심장>, 숲을 지키는 <한 그루 나무>는 생명의 귀중함과 더불어 사는 삶의 다정함을 새삼 일깨워 준다. <스스로 바다를 이루어> < 해를 품>으려는 포부는 <한 그루 나무>의 겸손에 비해 매우 장쾌한 이미지이지만, 이 역시 쇄신된 감성으로 삶의 눈부심과 은혜를 느끼는 이의 달관과 지극한 기쁨을 드러낸다.
 제2부의 여러 작품에 비해 긴 길이의 「장승」과 「異說 놀부論」도 이번 시집에 무게를 더한다. 또, 古典과 풍속을 다룬 두 작품은 존재와 理想을 향한 그리움의 모티프를 다룸으로써 紀行詩와 日誌의 관심과 연합된다.
 「장승」과 「異說 놀부論」의 구절을 인용한다.

   이른 봄날
   아슴아슴 눈부시게 타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도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저녁놀 같은
   애달픔이나 하염없음도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고 손가락 건 약속도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사는 세상……
                                        ㅡ「장승」 제1부의 구절

   그리운 섬 그대여
   비유가 없는 이 시대
   풍자가 없는 이 나라
   바닷속에 숨었다 드러났다 하는
   파랑도 같은 그대
   그리운 섬이여.
 
   지리한 장마 끝
   하늘 터지며
   반짝이는 웃음소리
   언뜻 스치는
   낯익은 얼굴
   금빛 그리움이다.       
                   ㅡ「異說 놀부論」도입부

 「장승」은 계절과 하루의 리듬 및 자연경관의 사례를 들어 현실의 삶에 매몰된 정신과 존재와 理想에 열려 있는 정신을 대조한다. 「異說 놀부論」은 <파랑도>, <금빛 그리움> 등의 색채의 상징으로 理想界를 표현하며, 『興夫傳』의 설화와 해학이 현실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서민의 꿈에 관련된 것임을 상기시킨다. <비유>와 <풍자>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유념하는 정신의 긴장에서 생성되는 까닭이다. 둘째 연의 日光의 이미지도 첫째 연의 <파랑도>처럼 순수와 광명의 이상계에 대한 적절한 비유이다.
 남해안 기행시와 우이동 일지는 洪海里 시의 자연스러운 전개이면서도 일상적 소재의 다각적 취급에 의한 점층적 효과는 새로움과 進境을 이룬다. 기행시와 일지의 주제적 통일성은 다시 제2부의 여러 작품의 관심으로도 보강됨으로써, 인생론적 명상의 깊이와 함께 『淸別』을 가장 균형잡힌 업적으로 부각시킨다.  

                                                    淸別 (동천사.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