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01년 佛앙드레 말로 출생 [동아일보 2005-11-03] 그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캄보디아에선 앙코르의 한 유적지 도굴범으로 체포됐고, 인도차이나에선 혁명가였다. 스페인 내전 때는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레지스탕스 지도자였다. 전후엔 샤를 드골 대통령의 든든한 오른팔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앙드레 말로(1901∼1976). 그의 삶은 20세기를 종단하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였다. 스스로 각본을 쓴 무대에서 그는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죽음의 공포는 범인(凡人)의 전유물일까. 그는 삶과 죽음이 한데 얽힌 현장에서도 무모할 정도로 초연했다. “말로는 비행기가 무엇인지 기본적인 개념도 없었을뿐더러 비행사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특히 전시(戰時)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스페인 내전 당시 한 장교) 말로는 딱 하루 교육받은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를 타고 출격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 시절엔 포탄과 총탄이 쏟아져 모두들 참호에 몸을 숨기고 꼼짝도 못할 때 혼자 언덕에 올라 담배를 문 채 적진을 응시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한마디로 돈키호테 같은 삶이었다. 그러면서도 역사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후세의 전기 작가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볼지 고민했다. 저널리스트인 올리비에 토드 씨는 ‘앙드레 말로, 일생’이라는 책에서 미공개 공문서 등 사료를 샅샅이 뒤진 끝에 말로가 신경질환을 앓았으며, 대학 학력을 속였고, 레지스탕스 지휘자를 사칭했다고 썼다. 과장과 허세, 희극성이 ‘앙드레 말로’라는 드라마를 감상하는 또 다른 실마리였다. 1940년대 미국 라이프지(誌)가 소설 연재를 거부했을 때 “나는 히틀러보다 유명하지 않다”고 괴로워했다. 드골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나는 무척 놀랐다. 아니 그렇게 많이 놀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언제나 유용한 사람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기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신화 속에서 언제나 떳떳했다. 대표작 ‘인간의 조건’(1933년)에서 말로는 웅변한다. 한 인간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행위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 행위는 역사 속에서 정당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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