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허먼 멜빌

洪 海 里 2005. 12. 16. 11:08
[책갈피 속의 오늘]
1819년 美작가 허먼 멜빌 출생
[동아일보 2005.08.01 03:10:53]

때로는 현실의 삶이 인위적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할 때가 있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 그의 삶은 양지에서 음지로, 천국에서 나락으로 폭풍 속의 배처럼 출렁거렸다.
1819년 8월 1일 미국 뉴욕의 명문가에서 출생.
그러나 13세 때 아버지가 파산의 충격으로 세상을 떴다. 학교 대신 상점과 은행, 농장을 전전하며 고단한 10대를 보냈다.
20세에 무작정 바다로 나섰다.
5년간 이어진 선원 생활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모험 활극이었다. 특히 포경선을 타다 탈출해 식인종 마을에서 보냈던 시절은 압권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태평양 현지에서 입대해 수병으로 귀향했다.
전화위복.
그 시절의 경험을 살린 소설 ‘타이피’와 ‘오무’가 연달아 히트했다. 당대의 누구보다 순조롭게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순탄한 삶은 길지 않았다. 전업 작가로 공을 들인 ‘마디’는 평단의 철저한 외면으로 참담한 실패를 했다. 멜빌은 생계 때문에 글을 썼고 ‘쓰레기’니, ‘담뱃값을 벌기 위한 글’이니 하며 자조(自嘲)했다.
역작 ‘모비 딕’이 다시 기독교에 대한 자유분방한 태도 때문에 비난을 받자, 멜빌은 분노했고 좌절했다.
적대적인 비평가들과 몰이해한 대중…. 그는 기진했다.
결국 절필(絶筆) 선언. 그의 나이 겨우 38세였다.
말년은 세관 관리로 평범하게 살았고 작가로서 완전히 잊혀졌다. 1891년 9월 28일 사망했을 때 뉴욕의 몇몇 일간지만 짤막하게 보도했다. 그나마 한 신문은 그의 이름을 ‘허먼’이 아니라 ‘헨리’로 표기했다가 정정하기도 했다. 드라마 ‘허먼 멜빌’의 클라이맥스는 정작 작가가 죽은 지 수십 년 후였다.
1919년 평론가 레이먼드 위버가 “‘모비 딕’이야말로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놀라운 걸작”이라고 격찬하면서 부활했다. 평단의 반성과 재평가가 이어졌고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됐다.
그가 죽기 직전 몇 달간 읽었다는 쇼펜하우어의 책에 밑줄을 그은 구절.
“사람이 후세에 속하면 속할수록, 다시 말해 인류 일반을 많이 포용하면 할수록 그는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그만큼 더 소외된다.” 드라마 같은 삶이었지만 주인공은 고독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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