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평등한 죽음?

洪 海 里 2005. 12. 16. 11:03
<책갈피 속의 오늘>

1977년 佛 단두대 마지막 처형
[동아일보 2005.09.10.]

2.3m의 높이에 매달린 40kg의 무거운 칼날. 스위치를 당기면 슥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을 잘라낸다.
단두대(斷頭臺).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2만 명이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혁명 기간 내내 파리는 피로 흥건했다. 단두대는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다.
앙시앵 레짐 시절 귀족 출신의 사형수는 칼이나 도끼로 목을 베었고 일반인은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국왕 암살 미수범 다미앵처럼 온갖 끔찍한 방법이 동원될 때도 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단번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사형수들은 돈을 주면서까지 혹 칼날이 무딘 것은 아닌지, 그래서 고통이 반복되는 건 아닌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고통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았다.
의사이면서 혁명가였던 조세프 기요틴(1738∼1814)은 단두대 도입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거론했다. 기계를 써서 빨리 끝내는 게 훨씬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프랑스는 단두대를 국가 표준 사형집행 도구로 지정했다.
귀족이나 평민이나 같은 도구를 쓰게 됐다. 프랑스혁명의 이념 가운데 하나가 평등 아닌가. 처형되는 순간일지라도 신분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단두대는 혁명의 이념과 닿아 있었다.
취지는 그럴 듯했지만 진행 상황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에선 20세기 초반까지 공개처형이 이뤄졌다. 사형수의 목이 떨어지는 장면은 대중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했다.
단두대가 역사책에나 나오는 전근대적인 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최근에 단두대가 사용된 건 1977년 9월 10일. 불과 28년 전의 일이다. 마르세유 감옥에서 튀니지 출신의 살인범이 마지막으로 단두대에 눕혀졌다. 단두대는 1981년 9월 프랑스가 사형제도를 공식 폐지하고 나서야 용도 폐기됐다.
사형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형벌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인간에 의한 합법적인 살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사형의 방법이 아니라 제도의 존폐를 논쟁하는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게 프랑스혁명 당시와 달라진 점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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