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54년 소설 ‘자유부인’ 논쟁
정비석(鄭飛石) 씨의 소설 ‘자유부인’이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됐다. 대학교수 부부의 일탈과 애정행각을
다룬 이 소설은 춤바람 등 전후 세태를 잘 묘사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더욱이 연재기간에 벌어진 지상 논쟁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황산덕 서울대 교수가 그해 3월 1일자 대학신문을 통해 ‘대학교수를 모욕했다’고 비난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3월 11일 작가인 정 씨가 서울신문에 ‘탈선적 시비를 박함’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창작의 자유, 대중매체의 선정성 등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했다.
정 씨는 “(황 교수의 비난은) 문학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개인적 흥분”이라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3일 후 “문학정신 없이 성적 흥분을 돋우는 표현은 문학이 아니다”며 “인기욕 때문에 저속한 작문을 쓰는 문학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적”이라고 정 씨를 비난했다.
이어 변호사 홍순엽 씨와 문학평론가 백철 씨가 논쟁에 뛰어들었다.
홍 씨는 21일 서울신문을 통해 “작가는 양식이 명하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붓대를 구사할 수 있다”며 정 씨를 옹호했다.
백 씨는 29일 대학신문을 통해 “신문소설은 후진적인 대중 취미에 신경을 쓰느라 저속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작가의 문학정신을 독자가 이해했든 않았든 간에 이 소설이 ‘대중 취미’를 만족시킨 것은 분명하다. 연재 후 나온 자유부인 단행본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1956년부터 1990년까지 6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윤리 기준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일면식도 없던 정 씨와 논쟁 이후 가까워졌다는 황 교수는 11년 뒤인 1965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닭 쫓던 개 모양으로 정 씨와 나는 아연실색하고 있다. 우리가 허심탄회한 기분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는 것은 둘 다 사회의 되어가는 꼴에
대해 허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40년이 지났다.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S데리아 밑에서는 육십여 명의 남녀들이 아름다운 고기 떼처럼 춤을
추며 돌아가고 있었다. …인생의 향락과 정열의 발산… 관능적인 체취에 정신이 현혹해 오도록 대담무쌍한 애욕의 분방….’ (‘자유부인’의 일부)
'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로빈슨 크루소 (0) | 2005.12.30 |
---|---|
<책갈피> 샬럿 브론테 (0) | 2005.12.30 |
<책갈피> 오에 겐자부로 (0) | 2005.12.30 |
<책갈피> 오 헨리 (0) | 2005.12.30 |
<책갈피> 레오 톨스토이 (0) | 2005.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