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책갈피> 프루스트

洪 海 里 2005. 12. 30. 09:29
05/11/08

[책갈피 속의 오늘]

 

 1922년 佛작가 프루스트 사망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입에서 녹아요.”

주인공인 ‘나’가 어느 날 홍차에 적신 마들렌(쿠키의 한 종류) 한 조각을 먹으면서 지난한 시간 여행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는 기법과 복잡한 줄거리로 아주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주제는 분명하다. 우리의 삶과 사랑도 결국 시간 앞에서 덧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파괴자 시간을 지배할 수단을 발견한다. 그것은 창작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가 다른 작품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잃어버린…’은 그가 온 삶을 바쳐 집필한 대작이다. 그의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홉 살 때 걸린 신경성 천식으로 평생 고생한 프루스트는 건강이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1909년 이 작품의 집필에 착수해 2년 후 제1편 ‘스완의 집 쪽으로’를 완성했으나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자비로 출판했다. 제2편 ‘꽃 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로 그는 비로소 문학적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19년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것. 그는 이후 타계할 때까지 죽음의 예감과 대결하며 ‘잃어버린…’의 완성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프루스트의 집안일을 돌보며 마지막 8년을 옆에서 지켜봤던 셀레스트 알바레는 그의 집필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방안에는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천식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가끔 훈연제를 태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긴 했으나 이토록 지독한 운무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체의 소리가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놓은 코르크 벽이었다. 그 때문에 마치 선술집에라도 온 것 같았다.”(‘나의 프루스트 씨’에서)

그 방은 밀폐된 공간이었다. 전등이라도 켜지 않으면 영원한 밤이었다. 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그의 창작에는 시간 밖으로의 이탈이 필수였다. 작품 속의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기 위해 정적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생활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고독과 정적을 선택했다. 그는 집필실 램프를 끄지 말라고 하며 숨졌다. 1922년 11월 8일의 일이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책갈피 속의 오늘·동아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갈피> 시인 김광균  (0) 2005.12.30
<책갈피> 아폴리네르  (0) 2005.12.30
<책갈피> 버나드 쇼  (0) 2005.12.30
<책갈피> 임어당  (0) 2005.12.30
<책갈피> 시인 구르몽  (0) 2005.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