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고고학 관광

洪 海 里 2006. 3. 16. 06:21

[책갈피 속의 오늘]

 

1900년 에번스, 크노소스 유적지 매입

 

‘유적을 건설한 사람!’

크레타 문명의 중심지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한 영국의 아서 에번스(1851∼1941). 그에겐 고고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붙어 있다.

1870년대 초반 크노소스 지역에서 유물이 출토되면서 사람들은 괴물이 살았다는 미궁(迷宮)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1900년 3월 16일 에번스가 크노소스 유적지 전체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고고학은 시간이 남긴 암호를 푸는 작업이다. 에번스는 암호 해독에 그치지 않고 과거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을 현재에서 볼 수 있게 구현하는 데 몰두했다.

옥좌(玉座)가 있는 방은 세 번이나 덧칠했고 주랑(柱廊·기둥만 있는 복도)에 늘어선 나무기둥은 콘크리트로 대체했다.

“발굴 작업장에 토목 인부보다 재건을 위해 투입된 석공, 목수, 대장장이가 더 많았다.”(발굴 현장을 둘러본 한 기자)

크노소스의 궁전은 미노스 왕의 궁전인 동시에 에번스 자신의 궁전이었다.

뮈토스(신화)가 로고스(논리)로 대체되던 시대였다. 신화는 보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현실로 끌어내야 하는가.

고대 문명에 대해 낭만적인 향수를 갖고 있던 사람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는 듯한 거북한 인상을 준다”(1907년 르네 뒤소)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 거대한 계단을 밟아 볼 수 있게 해 준 것과 이 경이로운 옥좌에 앉아 볼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한다”(1939년 헨리 밀러)는 평가도 있었다.

어쨌든 크노소스 유적은 그 화려함과 섬세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환기와 채광 시설, 상하수도, 욕조가 딸린 욕실, 수세식 화장실, 전망 좋은 베란다, 방을 서늘하게 하는 물탱크….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누린 호사에 후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인류의 기원이 유럽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던 때였다. 식민주의시대 유럽인들은 크노소스를 내세워 문명의 기원만큼은 유럽에 있다며 애써 자위했다.

콘크리트로 지탱한 덕분에 크노소스 유적은 세계대전과 지진에도 살아남았고 지금은 연간 90만 명이 찾는 최고의 관광지가 됐다.

인류가 기원전 20세기와 기원후 20세기가 뒤섞인 유적을 갖게 된 것도 에번스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동아일보 200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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