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뉴실버가 뜬다 (中)

洪 海 里 2006. 7. 28. 04:14

[뉴실버가 뜬다]<中>

 

자녀동거 NO, 상속도 NO

[동아일보 200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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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식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부 이희자(66·서울 관악구 신림동) 씨는 나이가 예순 줄에 접어들면서 남편(66)과 다짐한 게 있다. 건강할 때까지 열심히 벌어서 쓰면서 살자는 것이다. 조그만 가게를 하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면 부부가 시설 좋은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게 꿈이다. “딸아이가 하나 있지만 어차피 시집가서 따로 사니까 ‘쓸 만큼 쓰자’는 생각이에요. 재산 남겨주고 뭐 그런 거 없어요.” 부부는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유명 사찰이 있다는 전국의 산 가운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란다. 굳이 해외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그는 “일단 벗어나면 새롭다”며 “지방의 맛있다는 식당도 잘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자녀로부터 독립하자. 이것이 뉴실버(New Silver)세대가 전통적인 노인세대와 달라진 점이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도 죽기 전에는 ‘노(No)’다.

본보 취재팀이 신한은행과 공동으로 전국 59∼67세(1939∼47년생)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고령자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이런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 자녀와 함께 살기 싫어

뉴실버세대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만 뒷바라지를 하고 이후에는 부부 중심의 삶을 원한다.

물론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기존 세대와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60.0%)는 응답이 많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60.4%)이지만 두 번째는 여전히 자식의 교육과 결혼(13.0%)이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출한다는 응답도 56.4%에 이른다.

하지만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이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51.0%)가 자식이 결혼한 후에는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도(32.4%), 자신의 건강이 나빠져도(18.6%) 따로 살겠다고 대답했다.

은퇴 후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하는 신모(60) 씨는 지금 25, 27세인 두 아들이 결혼을 해도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고 했다.

“며느리 있으면 속옷 바람으로 집에서 왔다 갔다 하기도 불편하고…. 능력이 되면 따로 살아야죠. 친구들을 봐도 처음에는 같이 살다가 결국엔 다 분가합디다. 자식이나 부모나 서로에게 의지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 귀여운 손자도 1시간이면 충분

뉴실버세대는 손자나 손녀를 돌보는 것에 모든 것을 쏟지 않는다.

가끔 보면서 예뻐하기만 하고 전적으로 돌보기는 싫다는 응답이 55.0%로 절반을 넘었다.

최모(67·무직) 씨는 손자손녀가 세 명이다. 한 달에 한두 번 결혼한 아들과 딸이 찾아온다. 하지만 보통 때는 무척 보고 싶었던 손자손녀들도 딱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집에 와서 시끄럽게 하거나 울고 그러면 귀찮아져요. 처음에 와서 얼굴 봤을 때가 제일 좋고 시간이 좀 지나면 어서 갔으면 하죠.”

그는 자녀들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손자손녀들을 오래 봐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자식과 함께 살지 않고 손자도 전적으로 돌보지 않는 현상은 뉴실버세대가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며 “이런 태도를 이기적이라고만 볼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돈이 효자를 만든다”

자영업을 하는 박모(60·여) 씨는 6남매 중 막내다. 현재 80대인 언니들에게 누누이 들어온 말이 있다. 경제권은 끝까지 놓지 말라는 것이다.

“저도 1남 2녀의 엄마로서 기본적으로 해 줘야 할 건 해 주지만 스스로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은 끝까지 지키려고 해요. ‘돈이 효자를 만든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아요.”

3명의 자녀 중 두 명을 결혼시킨 박 씨는 노후를 생각하면 자꾸 계산적이 된다고 털어 놓았다. 자기 짝을 찾아 떠난 자식이나 국가에 자신의 노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뉴실버세대는 자녀에 대한 재산 상속에 있어서는 ‘깍쟁이’에 속한다.

3명 가운데 2명(65.0%)은 자신이 죽기 전에는 재산 상속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상속을 하겠다는 답은 10.8%뿐이었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 사회에 환원하는 데 대해서는 50.6%가 찬성했다.

이번 조사 실무를 맡은 리서치회사 에이엔알(ANR)의 이문한 연구부장은 “상속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만큼 쓰고 남으면 상속을 하겠다’는 의식이 엿보인다”며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응답이 많아진 것도 뉴실버세대가 예전 어르신들과 달라진 점”이라고 분석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노후준비 절반도 못했다” 53%

한달생활비 1인 평균 147만원 필요… 52%가 50대넘어 준비▼

뉴실버세대는 자의식은 강하지만 노후 대비는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시대를 살아온 탓이다.

이번 조사 결과 뉴실버세대 중 노후 준비 수준이 50% 미만이라는 응답자가 52.8%나 됐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이 많았다.

50대 또는 60대부터 노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대답도 52.5%에 이른다.

이는 재테크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신한은행 최재열 상품개발실장은 “새로운 재테크 상품이 나오는 속도가 10년 전에 비해 10배는 빨라졌다”며 “경제에 대해 잘 알아야 재테크를 하는데 뉴실버세대는 예금이나 적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후자금 마련 방법을 물었더니 예금과 적금이라는 응답이 43.2%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부동산 임대수입(17.8%)과 개인연금(17.4%)이어서 기초적인 재테크 방법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후 필요한 노후자금의 액수에 대한 전망도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뉴실버세대는 현재 한 달에 필요한 생활비가 1인당 평균 147만 원이라고 대답했다. 노부부가 현재 물가수준에서 아껴 쓸 때 필요한 돈이 한 달에 200만 원이라고 가정해도 20년간 4억8000만 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노후자금으로 4억5000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 응답자는 4명 중 1명꼴(24%)에 불과했다. 필요한 노후자금이 3억 원 미만이라고 답한 사람(48.0%)이 절반에 가까웠다. 필요자금에 대한 예측을 잘 못하고 있는 것.

“죽을 때까지 쓰고 남으면 상속하겠다”는 뉴실버세대는 최근 등장한 역(逆)모기지론에 관심이 많았다. 역모기지론은 집을 금융회사에 담보로 잡히고 매달 일정액을 받는 상품.

경기 고양시 원당에 3억 원대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이모(65) 씨는 올해 2월 정부의 역모기지론 활성화 방안이 발표되자마자 은행 재테크 상담창구로 달려갔다.

이 씨는 공무원 연금 등으로 매달 200만 원을 넘게 받고 있지만 경조사비를 내고 여행도 다니면서 여유롭게 보내기에는 모자란다고 봤다.

다만 자신이 죽은 후 아파트 소유권이 은행에 넘어가기 때문에 자녀들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아파트를 결혼한 세 자녀에게 물려주는 대신 노후 자금으로 쓸 생각을 굳혔다. 자녀들에게도 이러한 결심을 통보했다.

신한은행 최 실장은 “현재 부부 모두 65세 이상이어야 가입할 수 있는 제한이 풀리면 역모기지론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