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줄 4

빨랫줄

빨랫줄 洪 海 里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나는 팽팽하게 걸린 지구의 마지막 힘줄, 맑은 날이면 햇볕에 반한 하늘도 내려와 옷을 벗는다 내게 매달려 펄럭이는 푸른 희망들 물에 바래고 햇빛에 바랜 깨끗한 영혼들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늦게 돌아와 빨랫말미를 잡은 처녀들 신산한 속속곳들이 내게 와 매달린다 상처가 지워지듯 털어내는 집착이라는 병 가벼워질수록 빛나는 웃음소리로 바스락바스락 마르는 양말짝의 길 젖은 무게만큼 나는 황홀했다 그런 날 밤이면 내 몸도 출렁출렁 바람에 흔들린다 유성이 내려와 품에 안기고 칠흑의 밤은 깊어간다 바람도 잠든 한밤 눈을 뜨는 그리움처럼 마당에 빨랫줄 하나 하늘을 가르고 있어야 사람 사는 집이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맑은 날이면/ 햇볕에 반한 하늘도 내려와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