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洪 海 里 1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품 안 토양산성土壤酸性의 이랑마다 늦가을 햇살만 기운 채 빗기고 있었다 가랑잎을 갉아 먹으며 산자락을 휘돌아 온 앙상한 뼈바람이 풋풋한 흙 속의 한 알 보리를 흔들어 잠을 깨우고 있었다 다섯 뿌리 하얀 종자근이 발을 뻗어내리는 속도따라 햇살은 점점 기울어져 조금씩 모신母神의 품으로 내리고 있었다 2 두견새 목청 트이는 동지 섣달 칠흑빛 어둠을 뚫고 겨울을 털어내리는 하얀 눈은 내려 쌓이고, 깃털, 꽃머리, 비늘잎도 모두 밑둥마디에 묻어두고 한 치 땅 속에서 언 발을 호호 부는 소리 아직은 잠결, 유년 시절 고호의 손가락 같은 하얀 이파리들 골로만 모여 쌓여 있는 바람의 넋을 불러내어, 들뜨는 팔다리를 눌러 앉히며 미루나무 물 오를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3 손톱 같은 달이 모과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부황이 든 얼굴 부러진 팔과 다리가 규폭마다 일어서고 있었다 짝 잃은 신발 한 짝 지난 겨울 아이들이 놓치고 간 연줄을 잡고 있었다 잠깨어 목마른 아우성에 강도 마르고 불처럼 이는 함성 새벽새의 울음소리 신선한 벌판 3월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4 어디선가 종달새 노래가 밝게 쌓이고 있었다 하늘의 시녀들이 부르는 노래 ----- 몸뚱어리도 질박한 처녀처럼 뒹굴어도 껴안고 뒹굴어도 물들지 않을 바다 때깔 곱게 익고 있었다 밭 둑 미루나무 물이 올라 이파리마다 눈이 부신 정오 바람에 옆구릴 간질린 나비 한 마리 부산히 하늘을 털어내리고 있었다 5 햇볕이 땡땡땡 울고 있었다 대창을 든 병사들처럼 갈구리까락을 받쳐 들고 아이들이 그을음없이 타는 유화油畵, 황금 벌판을 파도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미친 듯한 반 고호의 자유自由 넓은 밭마다 가득 차고 한켠으론 황토黃土ㅅ빛 고개가 보였다 반만년 오른 고개가 보였다 찌르륵 찌륵, 여치가 한낮을 걸르고 있었다. |
(시집 『花史記』1975) |
* 보리 : 임교선 시인의 페북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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