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무교동 · 10

洪 海 里 2006. 11. 18. 16:50

무교동 · 10

 

홍 해 리

 

 

어둠의 입술은 탄다
막강한 새벽의 나팔소리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
우리들은 만리허공의 한 송이 풀꽃
부질없는 구름과 비와 바람의 꿈.

마른 번개가 번쩍이며
병동의 흰 벽을 두드리고
숱한 꽃송이들이 잠 속에서
밀려오는 서쪽의 해일로
허물어지고 있었지.

버드나무잎은 버드나무잎대로
버드나무 휘어진 어깨를 떠나
낙낙히 흩날리고
서울의 허리를 부여잡고
천의 눈썹이 하늘에 떠 있었지.

뿌옇게 젖어 있는 은하수 아래
출렁이는 허무의 바다
고래사냥에 나선 사내들이
흐린 물빛 위
빈 손으로 돌아오고
육지의 흙내음에 취한
뱃전을 치는 오색 불빛
펄럭이는 육지의 불빛만 빚났었지.

바닷길따라
뱃길을 가르며 날던 갈매기 떼
빛나던 깃털마다
돌던 기름기
방향감각을 잃은
하얀 이마 흐릿한 하늘로
밤은 끝없이 내리고 있었지.

의식의 길을 따라
이승의 끝까지
어둠이 익은 그 끝
사방에서 충만한 빛이 일어서고
아청빛 넋은 눈뜨고 깨어자기 위하여,

무작정
무너지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우리는 허물어져
깊은 잠의 수렁에 침몰했었느니,

그러나 아침이면
태양은 허물어진 우리를 일으키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며
이마 위에 한 알의 빛알갱이를
남겨주었느니,
여름이 오고 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면
흰 눈발은 일색으로 내렸느니
평온한 내일의 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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