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와 蘭

<蘭칼럼 1> 난의 곁에서

洪 海 里 2006. 11. 26. 06:48

<洪海里 蘭칼럼>

 

   난의 곁에서

 

   소리없이 부르는 노래

   동양의 고전이여,

   움직이지 않는 춤

   초록빛 의미로

   쌓는 꿈이여!

       -졸시「난」의 일부

 

 우리는 왜 난을 기르는가?

 현대문명은 우리에게서 여유을 빼앗아 갔으며 인간성마저도 변하게 하고 말았다. 길에 나서면 하나같이 발길이 바쁘고 식당에서도 모두가 쫓기고 있는 것 같다. 난을 기른다는 거은 바로 이렇듯 바쁘고 쫓기는 가운데서도 생활의 여유를 찾고 삶의 의미를 천착해 볼 수 있는 정신적인 안식처를 마련하는데 그 큰 뜻이 있다. 다시 말해서 난을 가까이 함은 바로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또한 시멘트와 철근의 숲 속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일종의 자아발견이다.

 

  난초는 풀이다.

 잡초다. 그러나 난은 사군자의 하나다. 산야에 그대로 자라고 있을 때 그것 자체는 난이 아니다. 우리가 그 난초에 인격을 부여했을 때 비로소 난이 되는 것이다.

 난은 외떡잎식물 가운데 가장 큰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고도로 진화된 식물이다. 우리 인간은 가장 진화된 만물의 영장이다. 그러니 난과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서 만난다는 일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과 조건은 바로 난에게도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난은 미인이란 꽃말이 보여주듯 어느 모로 보든 미인임에 틀림없다. 잎은 잎대로 나긋나긋한 미인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고 꽃의 형태나 색깔과 향기마저도 맵시있고 우아하며 맑아 지성미를 고루 갖춘 여인상이다. 서양에서도 난이 꽃의 여왕으로 기려 가꿔지고 있음은 난에 대한 동서양의 생각이 같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꽃이 없을 때는 안정 평화 이상 지성 소박 휴식을 뜻하는 녹색의 수려한 이파리가 우리의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치료 효과를 갖추고 있다. 한편 꽃이 피면 온갖 형태의 꽃 모양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여 흘러넘치는 그 맑은 향이 우리를 선경에 와 있게 한다.

 봄이 되어 모래를 뚫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힘찬 모습과 여름의 가장 더울 때 꽃대가 나와 가을 겨울을 지나고 꽃을 피우는 춘란의 인내와 끈기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한다.

 왜 난을 기르는가 묻지 말고 직접 난을 길러 볼 일이다. 모든 대답은 난이 직접 해 줄 것이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가고

햇빛 다사로운 동남향 산기슭

잔잔한 호숫가

초가집 저녁연기가 오르고 있다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

몇 대가 한 집안에서

늘 정다운 얘기로

다숩은 모습이 사랑홉다

 

커가는 자식들 사이

꽃이 피면

보듬고 감싸안는

하늘과 땅

한 사내와 계집이 보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화장하지 않아도 화안한

끊이지 않는 노래

쉬임없는 춤사위

소리없어도 천지에 가득하고

움직임이 없어도 온 누리에 흐르나니

 

가까이 있으나

멀어져 있으니 마음은 하나

초록빛 날개를 단 사람들이

하늘가를 날다

돌아오고 있다.

   - 졸시「난을 보면」전문

 

(『梅蘭山芳』창간호.198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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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운데는 꽃뱀도 있다

 

매년 인사철이면 난초가 동이 난다. 승진이나 영전 때 난초를 보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난초는 예로부터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선비를 상징했다. 따라서 난초를 보내는 것은 사악한 것을 쫓아내고 어떤 환경에서라도 고고한 향기를 풍기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난초는 정말 선비처럼 고고한 꽃일까. 정답은 '노우(NO)'다. 난초의 어떤 종류는 사실 꽃과 곤충의 세계에서 '위군자'(僞君子·가짜 군자)다.

일반적으로 꽃은 곤충에게 수분(受粉)의 대가로 꿀을 제공한다. 그러나 난초는 특정 곤충의 암컷처럼 보이거나 암컷 냄새가 풍기는 꽃을 만들어 수컷을 유혹한다. 벌이나 말벌 수컷은 난초의 섹시한 꽃에 유혹돼 짝짓기를 시도한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곤충의 몸에 꽃가루가 묻게 된다. 이들 수컷 곤충이 다른 난초 꽃을 방문하면 수분이 이루어진다. 곤충의 입장에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헛일(?)'만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곤충에게 난초는 군자가 아니라 '꽃뱀'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실 난초의 '성적 사기 전략'은 진화적인 관점에서 미스터리다. 꿀을 제공하면 벌과 말벌, 새, 개미와 같이 다양한 곤충이나 새에 의해 수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적 기만 전략은 단지 한 종류의 수컷만 유혹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암컷 말벌처럼 보이는 꽃은 단지 수컷 말벌만 유혹할 수 있다. 다른 곤충이나 새는 유혹하지 못한다. 이는 다른 꽃과의 재생산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성적 기만 전략에 또 다른 장점이 있는 걸까. 이탈리아 나폴리 페데리코 II대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콰줄루 나탈 대, 스위스 취리히대의 공동 연구팀은 여기에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탈리아와 호주에서 서식하는 31종의 난초들을 관찰한 결과 흥미로운 비밀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성적 사기 전략을 구사하는 난초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난초보다 곤충에 의해 수분 수송 효율이 월등했다는 것.

다양한 수분 곤충을 가진 난초는 곤충이 날아가는 도중 꽃가루가 땅에 떨어지거나 엉뚱한 종의 꽃에 수분되는 바람에 대부분 소실됐다. 반면 성적 사기 전략을 구사하는 난초는 특정 수컷 곤충이 여기저기를 헤매지 않고 바로 섹시한 동종의 난초 꽃으로 직행하게 하기 때문에 수송 과정에서 귀중한 꽃가루의 손실이 적었다는 것이다. 난초의 수분 전략은 사군자 중의 하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교묘하기 그지없다.
                                                                     임원철 기자 (부산일보 2010.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