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블랙리스트들의 나들이 / 고미숙

洪 海 里 2007. 1. 31. 07:12
블랙리스트들의 나들이


  고 미 숙 (우리시회원)


  “아이고, 우리 찍혀 부럿는갑소이~!”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윤석주 시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돌았다. 회장님이 따로 9인을 선별해서 메일을 주실 때만 해도 꼭 참석하라는 말씀이구나, 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황근남 시인이 보낸 <블랙리스트에 오르신 시인들께>라는 메일이 이 블랙리스트들을 바짝 긴장하게 했던 것이다.


  “회장님께서 불참 요주의 인물 9인을 선정하셨군요.”로 시작되는 메일은 보름 전 끊어놓은 비행기표로 버스 타고 비행기 타고 지하철 타고 가니까 이번에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 보자는 친절한 안내였다. 덧붙여 “부모 형제 배우자 교인이 돌아가시지 않는 한 창립총회에 꼭 갈게요.”로 마무리를 하고 있으니 어찌 우리가 긴장하지 않으리오.


  고성만 시인은 일본에 가 있는 관계로 전라도 블랙리스트 둘은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나 지하철을 갈아타며 우이동으로 이동했다. “솔숲 건너편이 맞당께”하며 찾아간 행사장,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난여름 다도해 여행을 같이 한 시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어느새 이물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늘 그렇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분들의 노고로 준비된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창립총회>행사가 임동윤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고 <제223회 우이시낭송회>가 목필균 시인의 사회로 이어졌다.

  박영원 시인은 아내가 보면 안 된다는 「눈 · 1」을 낭송하고 전주에서 올라온 김판용 시인은 매월 연재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하는 산문」이 책으로 나올 거라며 산문 「내 발자국에 눈 맞추리라」를 낭송했다. 그런가하면 제주도에서 날아온 황근남 시인은 자신이 마이크를 잡고 같이 올라온 따님이 엄마의 시 「새해에는」을 낭송했는데 회원들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다.


  초대시인 이시백 시인의 「다람쥐, 기도의 시간」은 마치 동화 속을 연상케 했고 임보 시인이 낭송한 「덧과 그물」은 “너도 짐승의 고기를 먹고 싶으면 덫을 놓고,/ 물고기 생각이 나면 그물을 던지려무나./ 다만 욕심이 지나쳐 덫과 그물 속에 온통 네 몸이 사로잡히지는 말아라.”라는 선문답의 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이규흥 시인의 「아버지의 임기」는 정말 부모의 임기는 언제까지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 시간이었다. 최상호 시인이 낭송한 이인평 시인의 「영혼의 나무」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시낭송을 해 주었고 중국에 가면 한 1년 동안은 못 볼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하던 조병기 시인이 「동백꽃」을 낭송해 우이시낭송회를 마무리 지었다.


  행사를 마치고 우리는 문학의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답게 음식점 ‘부뜨막’으로 이동했다. 왜 그런데 이곳만 오면 몸이 굳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음주까지만 하면 좋으련만 가무가 시작되질 않는가. 노래방 체질인 나더러 어찌하라고. 사회자와 주고받는 싸인 속에 권 시인이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를 부르자 이어서 누군가가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로 답을 하니 폭소가 터지지 않겠는가. 주고받는 음주가무 속에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노래방으로 쓸려갔다.


  “시낭송을 노래방에서 할 걸 그랬나.” 농담을 건네던 이대의 시인의 노래 “샹하이 샹하이 트위스트……”가 울려 퍼지자 성별 나이 상관없이 하나로 버무러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우리시회' 무용단 윤준경 시인과 김금용 시인, 남유정 시인은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이 몸 또한 ‘얼마 만에 접해 보는 무대인가, 역시 난 노래방 스타일이야. 중얼거리고 있는데…’ 최상호 시인이 부른 노래가 98점을 맞지 않는가.

  순간 박흥순 화백의 모자를 빌려들고 최상호 시인에게로 갔다. 난 아무 말 없이 모자만 들고 있었을 뿐인데, 아니 들이밀었던가, 어쩠든 그랬을 뿐인데 최 시인의 지갑에 있던 만원자리가 모자 속으로 뛰어들질 않는가. 그걸 들고 오늘의 자금 담당 이대의 시인에게로 가서 “오빠, 나 이뻐!” 하고 내미니 “응 이뻐 이뻐”하는데 역시 이대의 시인은 눈이 높았다. 그러는 동안 임보 시인의 말씀처럼 노래도 제대로 못 불렀는데 시간은 훌쩍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난 춤도 제대로 못 췄는데 말이다.


  하긴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법이지. 라이브 카페로 이동한다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지방에 거주하는 관계로 배웅하는 깊고도 따뜻한 눈빛들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으로 향할 때 그랬던 것처럼 회색 개량한복을 입어서 머리만 삭발 했으면 영락없이 스님인 윤석주 시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택시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윤시인은 광주행 심야버스를 난 익산행 심야버스를 탔다. 오랜만의 여행인데다가 오랜만에 운동을 과하게 했던 탓인지 차창에 머리를 몇 번 부딪친 기억밖에 없는데 익산에 도착해 있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 새벽 2시의 하늘에서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한가운데 서 있는데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 나비를 잡아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