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詩』와 우이시낭송회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창립총회 참석기

洪 海 里 2007. 1. 29. 20:44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창립총회 참석기

 

            최석우 시인 글

 

 
 

   2007년 1월 27일 오후 3시.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 창립총회가 있었습니다.

  '우이시낭송회' 제200회 낭송회 때 참석하고 이번이 223회 낭송회였으니 2년만의 나들이였습니다.

  아침에 눈이 앞이 안 보이도록 내려서 걱정했는데 수유역에 내리니 햇살이 보이더군요. 이제 한 달 되었다는 어린 택시 기사의 상상을 초월한 난폭운전에 바짝 긴장한 몸을 채 풀지도 못하고 도봉도서관 4층에 올라갔더니 이미 여러 선생님들께서 행사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언제 보아도 소년 같으신 임보 선생님, 목이 많이 부으셨다는 홍해리 선생님, 뵐 때마다 더 젊어 보이시는 송문헌 선생님, 수염으로 덮힌 동안으로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신 박흥순 선생님, 낭송회 사회를 맡으셔서 이리 저리 다니시며 정보수집 하시랴, 차를 준비하시느라 바쁘신 목필균 선생님, 노트북을 펼쳐놓고 창립총회를 기록하고 계신 윤준경 선생님. 윤준경 선생님의 책상에 놓인 꽃바구니는 참석을 못하신 박정래 선생님께서 카드와 함께 보내주신 꽃바구니였습니다. 뒷풀이가 끝나도록 그 꽃향기가 함께 했습니다.

  우이시회가 사단법인 우리시진흥회로 거듭나는데 노고가 많으셨던 임동윤 선생님. 처음 뵙는 선생님들도 계셔서-김동호, 한태호, 조병기 선생님- 인사를 드리지 못해 난감했습니다. 아, 그리고 제주에서 눈이 예쁜 막내딸을 데리고 오신 황근남 선생님, 새하얀 머리카락이 참 잘 어울리시는 신현락 선생님, 광주에서 도착하신 윤석주 선생님, 노란 머리로 나타나셔서 이 날 공주란 칭호를 얻으신 배경숙 선생님, 손녀 서하가 없었다면 행복이란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서하 할아버지 이무원 선생님, 꼿꼿한 옛 선비를 연상시키는 박영원 선생님, 그늘이 참 향기로울 것 같은 나무와 나병춘 선생님, 몇 달 전에 뵈었을 때는 단발머리였는데 긴 머리로 저를 놀라게 하신 익산의 고미숙 선생님, 하얀 수염에 색색이 예쁜 옷을 입고 오신 박희진 선생님, 아직 미혼이신 이대의 선생님, 행사 내내 사진 촬영을 해주신 임계순 선생님...이름표를 목에 걸고 서로 인사하고 근황을 물으며 3시를 맞았습니다.

 

   우리시회의 새 수석 부회장으로 선출되신 임동윤 선생님의 사회로 우이시회 2006년도 정기총회와 결산보고부터 우리시회 창립총회의 모든 순서가 함축미를 사랑하는 시인들답게 제청과 동의와 재청과 박수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행사 중간에 마냥 행복해 보이시는 김금용 선생님과 전혀 마흔다섯으로 보이지 않는 고운 목소리의 윤정옥 선생님께서 도착하셨고 이성렬 선생님과 김소양 선생님께서는 다른 일로 중간에 자리를 뜨셔야 했습니다.

   격려사를 맡으셨던 박희진 선생님께서는 말씀 끝에 ‘5분만 하라고 했는데 2,3 분 정도는 초과한 것 같다’고 하셔서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듣고 있던 회원들이 웃을 수밖에 없었고 이어 고창수 선생님께서 격려사를 해주셨습니다.

  5시 무렵, 치과의사시인 이영혜 선생님께서 축하 케잌을 들고 오셨고  칼있으마(카리스마) 홍 회장님께서 임기 2년의 '우리시회' 초대 회장님으로 선출되셨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맡기 싫다는 말씀에 아마도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되면서 회원으로서 아무것도 도와드리는 게 없는 마음에 죄송함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창립총회 내내 목필균 선생님과 박흥순 선생님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쪼글쪼글한 제 눈가에 주름 서넛 더 생겼을 것 같습니다. 뭔가 울적하거나 웃고 싶은 분들은 이 두 선생님 곁에만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어서 시낭송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시낭송회는 저를 제외한 모든 분들께서 개그잔치를 하시는 것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신현락 선생님은 하얀 머리 때문에 부인과 함께 길을 가다가 만난 부인의 친구로부터 부인의 시아버님으로 오해를 받았다고 하셨고 김판용 선생님은 윤석주 선생님으로부터 여자인줄 알았다는 소리를 듣고 남자라는 것을 꼭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셨고, 가나다순으로 제 앞에 글을 쓰시는 최상호 선생님께서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순수가 묻어날 것 같다고 하신 목필균 선생님의 소개에 이어 최...하길래 당신을 부르시는 줄 알았는데 최석우를 불렀다고 어디 두고 보자 별렀다고 하셔서 모두 웃었습니다.

   저는 목필균 선생님의 과분한 소개에 얼굴이 화끈거리게 취해서 할 말을 잃고 시만 낭송했습니다. 또 청주에서 오신 이규흥 선생님께서는 우리시진흥회 여섯 글자에 시인들의 이름을 앉혀주셨는데, '우'는 최석우, '리'는 홍해리, '시'는 초대시인이셨던 이시백, '진'은 박희진, 그 옆에 '흥'은 이규흥 당신께서 앉으셨다고 말씀하셔서 역시 선비의 고장에서 온 시인답다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중간에 국악여중 3학년 이신애 학생의 가야금 연주와 윤문기 선생님의 단소 연주가 있었습니다. 역시 시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시낭송회가 끝나고 근처의 식당 <부뜨막>에서 뒷풀이가 있었습니다. 남유정 선생님께서 도착하셨고  제주에서 오신 황근남 선생님은 대전 친정으로 내려간다고 식사도 함께 못하신 채 떠나셨습니다.

   아무래도 진로를 잘못 택하신 것 같은(죄송, 꾸벅)-이미 등산복 차림으로 오신 선생님께 제가 간첩 같다고 했기 때문에 다음에 뵐 일이 무지하게 걱정됨- 얼굴에 항상 웃음을 머금고 계신 권혁수 선생님의 사회로 잔치가 이어졌습니다.

   '우리시회' 공인 가수로 모셔야 할 윤준경 선생님의 노래, 매번 앵콜이 터지는 임보 선생님의 노래, 끝까지 듣고 싶었던 박영원 선생님의 성주풀이, 곡목은 모르지만 그냥 슬펐던 신현락 선생님의 노래, 최상호, 김판용, 또 성함은 모르지만 함께 하셨던 분의 노래... 노래들. 어쩌면 그렇게 노래도 잘 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는지요. 저더러도 하라시는데 제가 음악과 체육 점수가 아니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사람이기 때문에 극구 사양. 청도에서 이미 제 노래를 들어보셨던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침묵동의로 넘어갔습니다.

   마지막엔 목필균 선생님께서 노래를 부르시고 김금용 선생님께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셨고 한태호 선생님께서 함께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모두 같이 ‘토요일 밤에’를 부르면서 헤어졌지요.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는 노래방으로 2차를 가셨고 저와 다른 선생님들 몇 분은 각자 갈 길로(?) 떠났답니다. 왜 안 오셨을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셨던 선생님들..진심으로 뵙고 싶습니다.

 

   '우이시'에서 '우리시'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우이시낭송회는 여전히 '우이시낭송회'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시'에 모인 시인들의 마음이야 변화가 있을까요...있다면 '우리시회'의 창립선언문에 담긴 취지처럼 더 좋은 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더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시'에 모인 시인들의, 시인으로서의, 시에 담긴, 시를 통한 소망들이, 우리시회와 함께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날이 질적 저하를 보이는 기억력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그래도 이 글 쓰느라 제가 논산까지 태워다 주어야 하는 딸아이 학원, 못 갔습니다.^^

   다시 뵙는 날까지 모두 건강,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