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스크랩] 제주 참꽃과 홍해리의 시와

洪 海 里 2007. 5. 12. 05:45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올 들어 아직 오름에서 이 아름다운 참꽃을 대한 적은 없으나
사실상 오름 기슭인 한라수목원에서 5월 1일에 찍은 것으로
시인 홍해리 선생의 참꽃나무 시와 너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참꽃나무는 쌍떡잎식물 합판화군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제주참꽃이라고도 한다. 한라산에서 자라며, 키는 3∼6m이고
어린 가지에 갈색 털이 있다. 넓은 난형(卵形)의 잎은 어긋나는데
가지 끝에서 2∼3개가 돌려난다. 잎의 끝은 둔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깔때기 모양의 적색 꽃은 지름이 3.5∼6㎝로 5월경 잎과 가지 끝에 2∼4개씩 핀다.
10개의 수술은 꽃부리[花冠]보다 짧으며, 꽃자루·꽃받침·씨방에 갈색털이 빽빽이 나고
열매는 삭과(果)로 9월에 익는다. 암술대 밑부분에 털이 있는 털참꽃나무는 한라산에 난다. 한국에는 진달래속에 진달래·철쭉·만병초를 비롯해 10여 종(種)이 있다.

 

시인 홍해리(洪海里) 선생은 충북 청원 출생으로
1964년 고려대학교 영문과 졸업하고 '투망도', '화사기', '무교동', '우리들의 말'
'대추꽃 초록빛', '청별', '은자의 북', '투명한 슬픔', '애란', '푸른 느낌표!' 등
수많은 시집을 냈으며, 현재 월간『牛耳詩』대표로 계시는 분이다.

 

  

♧ 진달래 참꽃여자 - 홍해리(洪海里)
   
     1.

 

하늘까지 분홍물 질펀히 들여놓는
닿으면 녹을 듯한
입술뿐인
그 女子.


     2.
   
두견새 울어 예면
피를 토해서
산등성이 불지르고
타고 있는 그 女子.

섭섭히 끄을리는 저녁놀빛 목숨으로
거듭살이 신명나서
피고 지는
그 女子.


    3.
   
무더기 지는 시름
입 가리고 돌아서서
속살로 몸살하며
한풀고 살을 푸는
그 여자.

눈물로 울음으로
달빛 젖은 능선 따라
버선발 꽃술 들고
춤을 추는
그 여자.

 

  

  4. 
   
긴 봄날 타는 불에
데지 않는 살
그리움 또아리 튼
뽀얀 목의 그 여자.

안달나네 안달나네
천지간에 푸른 휘장
아파라 아파라
바르르 떠는 이슬구슬 그 여자.


   5.
   
바람처럼 물길처럼
넋을 잃고 떠돌다
눈물 뚝뚝 고개 꺾고
재로 남는
그 女子.


   6.
 
산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파르르 파르르, 떠는
불같은 사람
물 같은 사랑
그리움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이냐
수줍고 수줍어라, 그 女子.

꽃잎과 어루는 햇살도
연분홍 물이 들어 묻노니
네게도 머물고픈 물빛 시절이 있었더냐
울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파란 혓바닥 쏘옥 내밀고 있는
가녀리고 쓰라린, 그 女子.

 

 

  7.

 

아궁이의 불
기어 나오는 줄도 모르고
산자락만 바라보고 있는
불목하니.


   8.

 

나이 들어도
늙을 줄 모르고,

달래야!
한마디에,

속치마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볼 발그레 물들이는
그 女子.


  9.

 

연분홍
꽃잎
하나
술잔에
띄우면,

연애하다
들킨
계집애
달아나는
저 허공!

 

 

   10.

 

봄에 왔다 봄에 간 너의
침묵으로 피어나는 연분홍 아우성 앞에
무릎 꺾고 애걸하다 젖고 마는
눈물 맑은 손수건 다 펼쳐 놓고
싸늘한 바람도 잠깐, 꽃불이 붉어 무엇하리
피고 지는 게
다 이루지 못하는 세상일 줄이야
너를 보는 건 영원한 나의 오독(誤讀)이구나
물도 한껏 오르지 못한 하늘하늘 꽃 이파리
파리한 볼 서늘한 불로 태우고
그렇게 왔다 갈 걸 왜 왔느냐고
발걸음 멈추고 머뭇거리는 바람
화장도 하지 않은 민낯으로 서서
마냥 사무치는 그리움 이냥 삭아내리는데
산등성이 지는 해, 네 앞에선
어찌 절망도 이리 환한지
사미니 한 년 산문에 낯붉히고 서 있는가
한오백년을 술잔으로 비운다
되풀이 되풀이 비운다


   11.

 

생각만 해도
전신 마비
파르르파르르
몸살이 난
그 女子,

봄바람 하늘자락
홍조 피우고
옴짝달싹 못한 채
달거리 하는
그 女子.

 
   12.

 

대책없이 쓸쓸한 봄날이라고
속상해 하지 마라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고
엉덩이가 근질근질하지 않느냐
세상이 파릇파릇 웃고 있는데
장님이면 어떻고 귀머거리면 어때
날아라 날아라 환한 하늘이다
무작정 추락하라
그래도 좋아
참꽃여자 버선발로 달려나오고
한잔술 속을 데워
불을 밝히니
새들도 콧소리로 울고 있구나
꽃피는 봄이라고
물소리 젖고
바람머리 취해서
속곳을 풀면
어질어질 어질병 어쩔 것이냐. 

 

 

  13.

 

참꽃잎 술잔 띄워 몸을 벗으면
아지랑이 어질어질 어지러워서
꺽꺽꺽 목청 틔는 산까치까지
허한 허공 흔들며 봄날이 가네.


   14.

 

누가 뭐라 했는가
추억 속의 봄날은 가슴만 뛰어
꽃 피고 지는 일 멀기만 했다
마주하는 것조차 부끄러워
봄바람에 새실새실 숨넘어가는
연분홍 불꽃으로 꽃불 피우는
싸늘한 입술이 달아오르고
바위도 달싹달싹
안절부절못하고 색색거려서
볼그레 얼굴 붉히는
열서넛이나 되었을까
무작정 뛰쳐나온 철없는 계집애
누굴 홀리려고 한눈을 팔다
골짜기로 나자빠지는가
짧은 입맞춤에 피를 토하다
선홍의 산자락이 꽃사태로 무너진다
치정이다 불륜이다 그런 건 몰라
아무리 불임의 봄날이지만
봄볕은 자글자글 끓어오르고
가슴 깊이 묻었던 시퍼런 바람
취해서 바위 뒤에 잠이 들었다
오오, 독약이여. 엄살이여
환장하것네, 참!


   15.

 

산등성이 지는 해, 네 앞에선
어찌 절망도 이리 환한지
사미니 한 년
山門에 낯붉히고 서 있네
.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참꽃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