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달관 혹은 구도의 시 / 이근수

洪 海 里 2007. 4. 7. 15:09

 

   달관 혹은 구도의 시

 

         이근수 (회계학 ·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우언(寓言)과 비유들로 가득 찬 장자의 글이 흥미진진한 콩트집 혹은 산문집이라 한다면,『도덕경』5천자로 집약된 노자의 글은 대부분이 내재하는 운율을 느낄 수 있는 사언절구(四言絶句) 시문이라 볼 수 있다. 형식이야 다르지만 200년 내외의 시간차를 두고 쓰여진 두 책은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달관한 삶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우리 주위엔 시인도 많고 좋은 시도 많다. 요염하게 반짝이는 시가 있다면 달빛처럼 차분한 시도 있다. 거친 파도처럼 출렁이는 시가 있는가 하면 먼 산처럼 고요한 시가 있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시와 살을 저미는 고통스러운 시가 함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시도 수시로 바뀐다. 주지적인 시와 서사적인 시가 한때의 기호물이었다면, 그리움을 노래하는 애틋한 연시에 심취되었던 것도 꽤 오랫동안이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서일까, 세상의 분주한 시보다는 인생의 정점을 넘어선 곳에 고요히 침잠하며 자연과 삶을 노래하는 선가에나 속할 시를 요즘은 더 좋아하게 되었으니, 홍해리(1942~ )의「가을 들녘에 서서」라는 시도 그 중 하나이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노자가 그려주는 허정(虛靜)의 경지를 노래한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인지. 이 시에선 "오색이 사람을 눈멀게 하고 오음이 사람을 귀먹게 하며 재물이 사람을 어지럽히는[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難得之貨 令人行妨]" 혼란스러운 세상사에서 이제는 벗어나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자족할 수 있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마도 이러한 사람이라면 빈 그륷처럼 자신을 비우며 홀로 세상을 걸어가는 구도의 길을 자연스럽게 노래해준 이성선(1941~2001)의 시와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할 말이 줄어들면서

     그는 차츰 자신을 줄여갔다.

 

     꽃이 떨어진 후의 꽃나무처럼

     침묵으로 몸을 줄였다.

 

     하나의 빈 그릇으로

     세상을 흘러갔다.

 

     빈 등잔에는

     하늘의 기름만 고였다.

 

     하늘에 달이 가듯

     세상에 선연히 떠서

     그는 홀로 걸어갔다.

 

        - 이성선,「구도(求道)」

 

 

   좋은 시인은 어두운 밤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다. 그들의 시는 광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쏟아부어 주는 은은한 별빛이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른지.

(『님』2007, 봄, 창간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