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시(詩)는 ‘언어를 재료로 만드는 예술’로 불린다. 문학 장르 가운데 소설이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태동한 반면 시는 문자(文字)시대에 걸쳐 인간과 역사를 함께해 왔다. 하지만 시 쓰기가 보편화돼 있던 옛날에도 시에 관심 없는 젊은이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공자(孔子)는 “너희는 왜 시를 배우려 하지 않느냐. 시는 감흥을 돋우게 하고, 사물을 보게 하고, 여럿이 어울리게 하며, 은근히 정치를 비판하게 한다”고 가르쳤다.
▷요즘 해외 문단에서 시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외국의 서점 진열대에서 시집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시집을 내더라도 대개 자비(自費) 출판으로 소수 동호인끼리 즐기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의 느린 속도감과 운율이 바쁜 현대인에게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적으로 시의 생명력이 잘 유지돼 ‘시의 왕국’ ‘시의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1990년대만 해도 베스트셀러 시집은 수십만 부씩 팔려나가 외국 시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국 현대시의 효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시의 역사에 의미 있는 해를 맞은 거다. 하지만 시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시집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우리에게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낙담할 단계는 아니다. 주변에 시를 쓰겠다는 사람이 꽤 있는 것만 봐도 한국인의 시심(詩心)이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인도의 간디는 “시인은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선(善)한 마음을 능히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어느 나라보다 시를 사랑하는 한국의 시인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선의 학자 서유구(徐有구)는 “학문을 오래 쌓고 생각을 깊이 해서 콸콸 솟아 넘친 연후에 마침내 그것을 꺼내 문장을 지어야 항상 촉촉하고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쉽게 시류(時流)에 흔들리고 가볍게 시를 지어내는 시인이라면 한국인이 읽고 싶어 하는 시가 어떤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써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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