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홍해리 시인이 말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 / 손소운(시인)

洪 海 里 2008. 10. 7. 05:47

 

'홍해리 시인이 말하는 시인은 누구시길래'

 - 孫素雲 (시인)

 

크고 동그란 쌍거풀의 눈

살짝 가선이 지는 눈가

초롱초롱 빛나는 까만 눈빛

반듯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도톰하니 붉은 입술과 잘 익은 볼

단단하고 새하얀 치아

칠흑의 긴 머리결과 두 귀

작은 턱과 가는 허리

탄력 있는 원추형 유방

연한 적색의 유두

긴 목선과 날씬한 다리

언듯 드러나는 이쁜 배꼽

밝은 빛 감도는 튼실한 엉덩이

주렁주렁 보석 장신구 없으면 어때,

홍분 백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나풀나풀 가벼운 걸음거리

깊은 속내 보이지 않는

또깡또깡 단단한 뼈대

건강한 오장육부와 맑은 피부

한번 보면 또 한번 보고 싶은

하박하박하든 차란차란하든

품안에 포옥 안기는,

 

한 편의 시.

 

이 시는 2006년 6월에 펴낸 홍해리 시집 <봄, 벼락치다>' 가운데 '그녀가 보고 싶다'( 42쪽) 라는 詩이다.

그렇다, 진경산수 한 폭 寂滅의 여백 속에 오로지 독야청청 詩맛 五感에 道通하신 홍해리 시인은 '시'라는 신비한 존재를 애간장 녹이듯 절절하게 보고 싶은 여자, '품안에 포옥 안기는 詩'라고 우리를 깜쪽같이 골린 일이 있다. 

 

그렇다면, 홍해리 시인이 말하는 '시인詩人'은 어떤 존재일까?  홍 시인이 발표한 시작품을 중심으로 탐색해 보기로 한다. 

먼저, 오는 10월 17일 경기도 파주 적성의 벽지 어유중학교에서 벌어지는 가을 <어유문학제> 에 초대 받아 임보, 나병춘 시인과 함께 눈망울 초롱초롱한 어린 학생들 앞에서 낭송할 '시인이여 시인이여' 라는 시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말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산속에 숨어 사는 곧은 선비야

때 되면 산천초목 시를 토하듯

금결 같은 은결 같은 옥 같은 시를

붓 꺾어 가슴속에 새겨 두어라.

 

시 쓰는 일 부질없어 귀를 씻으면

바람소리 저 계곡에 시 읊는 소리

물소리 저 하늘에 시 읊는 소리

티없이 살라는데 시 써서 무엇 하리

이 가을엔 다 버리고  바람 따르자

이 저녁엔 물결 위에 마음 띄우자. 

 

 

이 시는 홍해리 시인이 1994년 펴낸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 가운데 '詩丸' 이라는 부제를 달아 발표한 시의 전문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침몰되어가고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피폐한 현대인들의 정신과 심성을 정화하면서 치유할 수 있는 '비타민 詩'로 정리해 본 시가 아닌가 추측된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낭송해 주기에 아주 적절한 시로 생각된다.

이 시는 작가 자신이 살고 있는 詩의 나라 우이도원 골짜기 옥매원玉梅園 세란정사洗蘭精舍를 배경으로 무소유의 삶을 소유하며 시업에 정진하고 있는 작가의 일상으로 줄창 울리는 '귀북'소리를  쓴 시로 생각된다.

7.5조 율격으로 지어진 이 시는 운율과 리듬이 가곡으로 만들어지면 참 고아롭고 정서적인 노래가 될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 시에서,

 

"말 없이 살라는데 시는 써 무엇 하리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 이라는 시말은 월간 '우리詩' 2008년 3월호 58쪽,'시야! 한잔하자!' 라는 홍해리 시인의 글 속에서

"나는  아직 시인詩人이 못 되었음을 오늘의 시인時人으로서 시인是認하는 일이 너무나 시인猜認하지만 어쩔수 없다. 詩답지 않은 글로 시답지 않은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시인矢人이 될 자질이나 능력도 없다.

시인이 무엇인가, 말의 화살이나 만들어 날리며 말장난이나 하는 사람인가?"라는 표현으로 자기를 낮추어 스스로 겸손해 하는 겸허한 그 자신의 선비다운 성품으로 지은 미덕의 시말일 뿐, 사실은 詩人으로써 시다운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의 패러독스로 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시 '물의 뼈' 중에서

 

 

'물이 절벽을 뛰어 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중략)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홍해리 시인의 숙명적인 힘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그의 탱탱한 열정이며 동시에 위에서 소개한 '물의 뼈'라는 시에서 보여주는 확연한 그의 강열한 힘의 의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다볼 일'이 아니다.

1975년 두 번째로 만든 시집 <花史記> 가운데 '다시 가을에 서서' 라는 시에서

 

"샐비어 활활 타는 길가 주막에

 소주병이 빨갛게 타고 있다

 불길 담담한 저녁 노을을

 유리 컵에 담고 있는  주모는

 루비 영롱한 스칼릿 세이지 빛

 반짝이는 혀를 수없이 뱉고 있다.

 

(중략)

 

 꽃잎은 천의 바다를 눈썹에 이고

 서른 하나의 파도

 허허한 내 오전의 미련을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한

 

홍해리 시인이 서른한 살 한창 젊은 나이로 박재륜, 양채영 시인과 교우하며 충주, 청주를 배회하며 샐비어 꽃무더기 새빨갛게  와와~ 함성으로 활활 불타 오르던 날의 부르르 부르르 경련을 하게 하던 것도 바로 시를 쓰는 숙명적인 힘이 아니겠는가.

서른하나 한창 젊은 나이 파도로 일렁이던 그의 피빛 뜨거운 외침은 아직도 그의 열정 속에 살아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홍해리 시인은 시말이 유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시말이 존재론적 운명에 이르는 시말임도 잘 알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의 영혼이 세계와의 상면 속에 이루어지는 주체적 감각과 사유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것은 그의 버릴수 없는 자존심이기도 하다

시를 쓴다는 것 그것은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은유다.

'모과' 라는 과일을 보고 그가 지은 시의 시말 가운데

 

 " 속내 드러내지 않고

   떠나간 자리

   오래오래 번지는 추억이라는 향香' 이라고 매듭을 짓는다.

 

그렇다, 시인으로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조용하고 수줍은 품성 그것이 바로 그가 시를 대하는 겸손한 태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엘리엇이 남긴  말 처럼 "가장 시인다운 시인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 쓰고 동시에 자기 시대를 그린다"

 홍해리 시인은  蘭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래서 그를 가르켜 蘭丁이라 한다.

2008년 '우리詩' 5월호 권두시론에서  "난은 선이며, 생명이며, 인식이며, 조화며, 통일이며, 철학이며, 예술이며, 인격이며, 정신이며, 농사며, 종교이며, 군자라고 극찬하면서,(12쪽)에서 '난은 詩이다" 라고 귀착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난을 가꾸고 씻기는 난정이 시인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난을 가르켜 녹색의 보석이라 하듯이 시도 녹색의 보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후에 우편으로 배달되어 온 잡지, '우리詩' 2008년 10월호를 펴 본다.

홍해리 시인의 글 권두시론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를 읽어 본다.

9쪽에 달하는 장문이어서 여기에 전문을 올리기에 벅차서 '명창정궤' 가운데  시에 관한 명석한 홍 시인의 금쪽 같은 글만을 뽑아서 실어본다.

'목재소를 지날 때면 나무 살 냄새가 향긋하다

나무의 피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나온다'로 시작되는 긴장감을 주는 좋은 글이다.

 

시인은 양파를 까는 사람이다

양파의 바닥을 찾아야 한다

양파의 바닥까지 천착해야 항다

철저히 벗겨 양파의 시작/씨앗/정수/처음을 찾아야 한다

늘 처음처럼 시작始作/試作/詩作해야 한다.(8쪽) 

 

매화나무가 폐경기가 다 되었지만 해마다 봄이면 이팔청춘이다

(중략)

오늘은 귀로 향기를 맡고 싶다

노매老梅 같은 시인을 만나 고졸한 시 한 편 듣고 싶다.(9쪽)

 

시인은 죽으면 신이 된다 

시를 버리면 사람만 남고

사람을 버리면 시만 남도록

시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신으로 탄생된다.((9쪽)

 

 

수평선 끝을  잡고 해를 걷어 올려라

너의 넋을 잡고 매달려라

시가 걸릴 것이다.(10쪽) 

 

모든 예술이 놀이하듯

시 쓰는 일도 영혼의 놀이다

시는 내 영혼의 장난감

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이

나의 시는 울퉁불퉁하다

그래서 자박자박 소리가 난다(10쪽)

 

맨발로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그것이 시였다(10쪽)

 

바다에 묻은 푸르고 깊은 그리움

숨비소리로 뱉어내던 쉰 목소리

그것이 한 편의 시였다(11쪽)

 

바람호수가 없으면 

붕어는 어디서 사나

죽은 붕어는 시가 아니다(11쪽)

 

가는 현의 찬란한 울림의 시 한 편이 관 속에 놓일까

바람 가는 길을 따라 무작정 가고 있다(12쪽)

 

어디선가 눈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있다

시 한 마리 따라 울고 있다(12쪽)

 

그늘이 짙으면  풀이 나지 않는다

시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12쪽)

 

시  한 편을 가지고

시집에 넣기 전 마지막으로 손을 본다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파여 있는 굽은 길이 보인다

손금이다(12쪽)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잘 죽기 위해서 시를 쓰는 일이란 다짐을

다시 한 번 다져 본다(13쪽)

 

하루살이 떼 같은 군상을 내려다 본다

허상이다

나의 시가 늘 그렇다(14쪽)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두고

어딘가로 스치듯 하루가 진다

쓰지 못한 시가 노을따라 지고 있다(14쪽)

 

나무 속에서 봄이 노는 소리 들린다

다시 붓을 들어라(15쪽)

 

우주의 자궁은 늘 열려 있다

냉수로 눈을 씻고 마음을 행구고 손을 모아라

새벽 세 시 우주와 독대하라

 

시를 쓰는 것은 육체가 행하는 것처럼 숨쉬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영혼의 행위다

어떤 곡해나 구속도 용납되지 않는다

시쓰기는 영혼의 자유 선언이다

시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늘 설레고 한 편 한 편으로 완성되는 이별이기 때문이다(15쪽)

 

그렇다. 홍해리 시인의 시작업은 일종의 성스러운 종교의식 같은 것이다. 

새벽 세 시, 차거운 냉수로 의식을 깨우고 마음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靜座處에서 우주와 독대하면서 시를 생각하는 것, 이는 詩에 도통한 詩仙이 아니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편의시를 짓는 것은 이리도 엄숙한 것이 아니겠는가.(14쪽)

 

누굴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시詩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상賞으로 상傷을 당하고 싶지 않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그것이 받을 보상이다.(15쪽)

 

여시아문 如是我聞! 

 

목숨이 내 것이듯 시도 갈 때는 다 놓고 갈 것이라고 한다.허상을 �지 아니하고 실상을 깨우치며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으로 시 쓰는  일에 수고를 다 한다는 것,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맑은 정신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시인이 넘쳐나고 시가 넘쳐나도 참다운 시인과 시가  잘 보이지 아니하는 때에 맑은 명경을 들여다 보는 마음이다.

가슴을 훑어내리는 금쪽같이 귀한 참다운 시를 위한 아포리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의 원초적인 참다움은 무엇일까

허술한 생각으로 스스로 묘혈墓穴을 파는 마른 울음을 우는 어리석은 시인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홍해리 시인이 2006년 6월에 펴낸 시집 <봄, 벼락치다> 가운데 20쪽 '그런 시詩'에서처럼 

 

"거문고가 쉴 때는

줄을 풀어

절간 같지만 

노래할 때는 팽팽하듯이,

 

그런 시詩" 를 쓸 일이다.

홍해리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른다.

 

 

시를 찾아가는 그대에게

 

초례청에 선 너의 자만을  몰아내고

너 자신을 적멸사막에 위리안치하라

간단없는 움직임으로 멈출 수 있도록

목첩에 닥친 어둠을 뚫고 또 뚫어서

홀연 새벽 빗장 여는 소리 들릴 때까지

마음속에 숨은 무명 스스로 빛날 때가지.

 

깊은 여행 속으로 뻐져들어 가라

버리고 온 발길을 찾아 명부까지

천의 계단 오르고 올라

돌계단이 다 닳아 버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홍해리 시집 <봄, 벼락치다> 67쪽 '시를 찾아가는 그대에게' 전문

 

마지막으로 홍해리 시인이 시로 쓴 시인에 대한 시론을 소개해 본다.

홍해리 시인이 생각하고 있는 시인은 누구인가

그는 '시인' 이라는 시(2008년년 4월에  펴낸 시집 <황금감옥> 가운데 117쪽)에서 시인에 대한 초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시도 때도 없어,

세월이 다 제 것인 사람

 

집도 절도 없어,

세상이 다 제 것인 사람

 

한도 끝도 없이,

하늘과 땅 사이 헤메는  사람

 

죽도 밥도 없이,

생도 사도 없이 꿈 꾸는 사람. 

 

 

그런가 하면 시인은 누구인가라는 시론을 보면,

 

바람이 자고 가는 대숲은 적막하다

 

적막, 한시에 적막한 시가 나온다

 

시는 우주를 비추고 있는 별이다

 

시인은 적막 속에서 꿈꾸고 있는 자. 

 라고 말 하고 있다. 

    - 시집 <황금감옥> 118쪽

 

또 그런가 하면 '시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 홍해리 시인은 이렇게 시론을 펼치고 있다.

 

내일이 대설大雪

구름 사이 햇빛, 우레가 울어

시가 눈앞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는 눈 뒤에 있었다

눈 뒤에는 하늘이 끝이 없다

포경선을 타고 작살을 던진다

고래를 잡으려고, 고래는 없다

시는 손 안에 있는 줄 알았다

손바닥에는 텅 빈 하늘만 춥다

발바닥에 길이 있고 강물이 흐른다 

산맥이 뻗어 있고 불의 집이 있다

시는 집에 없고 불만 타 오르고 있다.

 

아하! 시는 거기에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난다.

시를 쓰는 일이 밀가루 반죽이거나 마구 짤려진 나무 토막이거나 금가고 깨진 대리석 덩이거나 

아무렇게나 흩어진 동판이나 쇳조각이거나 낙화유수 이 강산을 물들이거나 백년을 가도 제자리인 달팽이처럼 나의 일생을 할喝할 푸른 혓바닥을 위하여 소금을, 왕소금을 듬뿍듬뿍 뿌리는 일이라고 홍해리 시인은 말한다. 

 

그는 그의 시집 <황금감옥>129쪽에 나오는 '나의 시 또는 나의 시론'이라는 시에서 시의 세포적인 인자에 대하여

 

 

마음의 독약

또는 

영혼의 티눈

또는 

괴골 속 벼알

또는

눈물의 뼈.  라고 시말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과연 시란 눈물의 뼈 같은 존재일까?

그렇다면 그의 시 '물의 뼈' 에서 처럼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하여 절벽을  뛰어 내리고 싶어진다.

 

가을이다. 누가 뭐래도 이제 그 지긋지긋하던 대책없던 여름은 사라지고 완연한 가을이다.

느슨하던 마음과 정신에 제법 찬 기운이 돈다.

마지막으로 홍해리 시인이 가을을 노래한 입맛 나는 시, 탱탱한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홍해리 시인의 시인 산책을 여기서 맺을까 한다.

 

갈시詩

 

가을이 오자

탱글탱글 여무는

부사리의 불알

불알 속의 탱탱한 불꽃

불꽃이 담금질하는 창 끝

창 끝에 걸린 하늘

하늘의 쪽빛

쪽쪽쪽, 쪽쪽! 

 

 

* 손소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andrea2430)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