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시평> 수술실에 들어가며

洪 海 里 2008. 9. 16. 20:40

 

수술실에 들어가며

洪 海 里

 

이것이 너와 나의 마지막

우주의 종말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나는 작디작은 먼지 알갱이 하나

우주의 무한공간을 떠돌다

지구 한구석에 잠시 머물고 있나니

빛이여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제 끝없는 블랙홀로 빠져드노니

작은 풀꽃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먼지 알갱이가 품고 있는 바람과 하늘과 바다여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하랴

내가 너를 다시 보지 못하고

네 여린 손목을 다시 보듬어 보지 못한다면

저 문이 다시 열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구는 굴러가지 못하리니

미안하다 고통과 절망의 세월이여

그래도 내일은 태양이 떠오르고

파도 소리를 잠재운 소금밭에서는

소금꽃이 영롱하게 영글 것이다

지상에서 산 자들은 기름진 사랑을 나누고

연어 떼는 모천을 찾아

불원천리 여행을 할 것이니

오 빛이여, 새 생명의 어머니여

지구는 영원을 향해 굴러가리라

새들은 고운 목소리로 생명을 노래하리라.

              -월간『우리詩』 2008. 8월호


 

[시 읽기]

  이 시는 유서 같다.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가 병마 앞에 무릎을 꿇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서 절대적으로 의지해야할 수술이라는 행위는 얼마나 끔찍한가!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해줄 수 없다.

그래서 화자는 유서를 쓰듯 시 한 편 써놓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수술은 내 몸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나를 죽이는 일이다.

나를 죽인다는 것은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가졌던 마음, 행해왔던 습관을 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일종의 고해성사이며 반성문이다.

화자는, 얼마나 참담하였으면 '미안하다'라고 중얼거렸을까.

부모님께, 아내에게, 자식에게, 친구들에게, 살아오면서 빚진 '고통과 절망의 세월'에게 사과한다.

읽는 이의 마음조차 참담하여 눈물이 나오려한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화자는 반짝이는 희망을 발견한다.

'영롱하게 영그'는 '소금꽃', '고운 목소리로 생명을 노래하'는 '새들'.

다시 돌아보게 된 소중한 가치이다.

이제 한층 더 고귀해진 나날들을 한 알의 ‘먼지’처럼 가볍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갈 것이다.

(고성만 시인)

                   -월간『우리詩』2008.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