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새·섬·그림·여행·음식

어청도 통신 / 김판용 시인

洪 海 里 2008. 10. 18. 07:38

잘 지내시는지요?
그동안 제 홈피가 문제가 있어서
엊그제 돈을 주고 홈피를 만들었습니다.

그 흔한 게시판 하나 없이 오로지 보관용 홈이라서
집이라기보다는 창고의 성격이 강합니다.

이제 사진을 원활히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얼마 전 어청도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서해 영토기점인 어청도는
군산에서 78km 떨어진 절해의 고도입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작은 섬이지만
바다를 안고 있는 형상이 신기합니다.
그래서 서해에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피하는
국가 1급 대피항이기도 하지요.




이 섬의 형상을 간파한 일제는 1912년
이곳을 서해안 어업전진 기지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를 세웠답니다.
실제로 그 등대에 서면
그렇지 않아도 망망대해인 섬이 고즈넉하게 느껴집니다.

이곳엔 등대지기 세 분이 계십니다.
어찌나 사람이 그리운지
다음에 오면 방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펜션 한 채를 그냥 내주겠다는 말에 솔깃,
근간에 벗들과 함께 들어가려고 합니다.)




등대로 오르는 길에 꽃들이 피었습니다.
항구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섬 전체가 암벽인 섬의 꽃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잔대가 보라색꽃을 피우고
수줍은 섬처녀처럼 서 있었습니다.
숫잔대의 날카로움보다 정갈한 암잔대이 깔끔합니다.



쑥부쟁이와 가실 쑥부쟁이도
가을을 맞이합니다.
청초한 쓱부쟁이를 구절초와 구분 못하는 분들도 있지요.
이보다 작은 개쑥부쟁이를
망초로 착각하는 분들도 많고요.




가실쑥부쟁이는 산에 가면 만나는
가을의 단골 꽃입니다.
봄 여름엔 자취도 모르지요.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꽃 밖에 아니지 않으니까요.
꽃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지요.
아예 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번 여정은 제가 취재해서 <푸른전북교육>에 싣는
작은학교 이야기에 어청도초등학교를 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교생 15명인 이 학교는 1925년에 개교했고
그후 20년간을 일본인 교장이 근무했답니다.

절해고도, 지금처럼 배편이 좋아도 기피하는 학교에
일본 사람이 교장으로 와서 근무했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사진은 그 학교 전교생의 모습입니다.

가는 날 배 멀미를 했는데
내일은 배가 뜨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험하지만 고깃배를 얻어 타고 나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청도 어부들이
채낚기로 잡은 고기를 사다가 파는 배인
이 섬의 말로는 ‘상고선’입니다.

고기를 잡아도 팔 수 없는 곳이라
이 배가 와야 돈을 만진답니다.

어청도에 대피주의보가 내려지면 배가 들어오고
선원 1000명 정도가 어청도에 내린답니다.
1인당 술 마시고 쓰는 돈이 얼추 10만원
이 작은 섬에 하루 1억원이 떨어지지요.

성매매금지법이 통과되기 전에
이 섬에서 일하는 술집 아가씨가 200명
섬주민 숫자와 같은 아기씨들 덕에 어청도는 불야성을 이뤘고
그래서 폭풍우는 하늘에 그들에게 내린 큰 축복이었답니다.

성매매금지법이효력을 발휘하면서
아가씨들은 떠났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이 섬의 청년들과 결혼해서 지금도 살고 있답니다.




그 섬을 빠져나오기 전에
좀처럼 카메라 앞에 안 서는 저도 한 컷 잡혔습니다.
아름다운 등대와 그 뒤로 펼쳐진 망망대해가
초가을의 오후 저를 잡아당긴 것이지요.

다음에 다시 뵙지요.
오는 가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김판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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