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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 은행나무

洪 海 里 2008. 10. 24. 14:11

방학동 은행나무 부활 ‘천년의 전설’ 꿈꾼다



수령 870년 추정 서울시 보호수 1호
빌라촌-아파트 들어서며 서서히 말라
인접 빌라 철거하고 아파트 담장 헐고
도봉구 애타는 노력 마침내 결실이뤄


서울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 묘역 앞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 25m에 둘레는 10.7m다.

추정 수령()은 약 870년. 고려시대인 1100년대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이 나무는 1968년 서울시가 보호수 1호로 지정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 방학동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예쁘게 물들었다. 땅에 떨어진 노란 낙엽이 나무 주변을 감싸 마치 노란 연못 속에서 나무가 솟아난 느낌이다.

한때 고사()할 뻔했던 이 나무가 이렇듯 건강을 되찾기까지는 험난하고 긴 여정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은행나무 주변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았다. 하지만 1988년 은행나무 바로 옆에 빌라촌이 형성되면서 나무의 수난이 시작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나무 왼편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뿌리가 잘려나가고, 공기가 통하지 않아 가지가 마르고 잎이 시들었다.

도봉구는 여러 차례 썩은 가지를 제거하고 영양제를 주사했지만 은행나무는 서서히 죽어 갔다.

본격적으로 은행나무 살리기가 시작된 것은 최근 들어서였다. 구는 지난해 7월 나무 오른편에 있던 빌라 2개동()을 매입해 철거했다. 올해는 나무 왼편에 있는 신동아 3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은행나무에 바람이 잘 통하게 하기 위해 아파트 담장을 허물고, 단지 내에 있던 나무 40여 그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구와 서울시는 9월 초 담장이 있던 자리를 포함한 2066m²의 땅에 ‘은행나무 정자마당’을 조성해 이 은행나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각종 건설 공사로 지하에 남아있던 많은 폐 시설물도 모두 철거했다.

도봉구는 조만간 이 나무의 역사를 생생히 기록한 책을 출간한다. ‘천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의 탈고를 앞두고 있는 박종천 도봉구 자연생태팀장은 “서울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지만 천년 가까이 우리 민족과 함께한 생명체는 이 나무밖에 없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전설과 사연이 무궁무진한 살아 있는 보물”이라고 말했다.

나라에 비운이 있을 때마다 불이 났다는 것은 이 나무에 얽힌 대표적인 전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1978년에도 불이 났다고 한다.

또 수나무지만 길이 1.2m의 하지(·아래로 향한 가지)가 있어 예로부터 아들을 낳게 해주는 나무로 사랑받았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이 은행나무에서 동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크기가 약간 작은 암 은행나무가 있었다. 여성 성기 모양의 동공이 있어 ‘여자 은행나무’로 불렸다. 두 은행나무는 부부처럼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자 은행나무는 아쉽게도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벌목되고 말았다.

박 팀장은 “사람들 때문에 고통 받던 은행나무가 이제는 이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는 상징물이 됐다. 이 나무가 천년의 생명을 이어가도록 더 많이 아끼고 보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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