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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물의 뼈 / 홍해리

洪 海 里 2009. 2. 4. 05:25

☛ 서울일보/2009.2.4(수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물의 뼈

홍해리

 

 

 

물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폭포의 흰 치맛자락 속에는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가 있다

 

길바닥에 던져진 바랭이나 달개비도

비가 오면 꼿꼿이 몸을 세우듯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생명을 세우는 것은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이 만드는 부드러운 뼈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막지 마라

물은 갈 길을 갈 뿐이다

 

 

◆ 시 읽기 ◆ 

 물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은 목숨 있는 것들을 세우기 위해서다. 연어 떼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고, 길바닥에 버려진 바랭이나 달개비가 비를 맞고서야 꼿꼿이 몸을 세운다.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물은 자신이 아닌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물에도 뼈가 있다. 부족하면 채워주고 가득차면 흘러넘치며,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물에도 뼈가 있는 것이다. 고이면 썩게 되고, 억지로 막으면 박차고 나가는 성질도 있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물의 뼈는 거칠고 날카로운 단단한 뼈가 아니라 물 스스로가 만드는 부드러운 뼈이다.

 사람답다는 것은 투철한 자존감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일 것이며,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자리이타의 이념을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격이 강하면 부러지기 쉽고 약하면 꺾이기 쉽다. 강함은 부드러움으로 다스려야 하는 중용의 원리를 알고 있기에 사람다운 사람살이를 위해서는 부드럽고 올곧은 성품을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물은 빈자리가 다 차면 주저 없이 흘러내릴 뿐, 물이 스스로 무리하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의 근본을 거스르지 않고 물처럼 살기를 원한다는 뜻이며,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부드럽고 원만한 원래의 성품을 추스르며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사람의 본분을 다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리라.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출처 :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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