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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기원하는 대보름 희망도 활짝 펴졌으면

洪 海 里 2009. 2. 9. 12:54

 

[날씨 칼럼]
풍요 기원하는 대보름 희망도 활짝 펴졌으면

 

 

- 반기성 (전문연구원·연세대학교 지구환경연구소·조선일보 날씨자문위원)


겨우내 조용하던 햇살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강물이

칼날을 번쩍이며 흘러가고

죽은 듯 움츠려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잠을 눈썹 끝에 달고

연초록 깃발을 꽂으며

시동을 걸고 있다.

               - 홍해리의「입춘」중에서

  매서운 북서풍이 잦아들고 해의 화살이 쏟아지면 대지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강물이, 나무가 봄의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이즈음에는 온기(溫氣)를 가진 모든 것들에 연분을 느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곡식 여신의 딸을 지옥의 신이 보쌈해 갔다. 딸을 잃은 슬픔에 곡식 신이 분노했다. 모든 식물이 말라 죽기 시작했고, 가축들도 떼 지어 죽어나갔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른 신들이 나섰다. 여섯달 동안은 딸이 엄마와 살도록 하고, 나머지 여섯달은 지옥 신과 사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때부터 딸이 땅으로 돌아오는 봄이면 죽어있던 만물이 살아난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입춘 무렵에 '죽은 자를 위한 제의(祭儀)'를 벌인다. 죽은 자를 불렀다가 되돌려 보내는 의식이다. 죽은 자를 표상하는 젊은이가 망자(亡者)의 춤을 춘다. 그 다음 청년을 마을 밖으로 쫓아낸다. 추위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망자를 밖으로 끌어내 쫓아내는 상징 의식이다. 따뜻함과 밝음의 봄이 오기를 소망하는 제의라 할 수 있다.

  우리네에게도 입춘 즈음에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를 외치며 콩을 던지는 풍습이 전해온다. 죽음을 가져온 겨울 귀신은 물러가고 봄의 생명이 풍성한 축복을 희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문화권에서 봄은 생명력이며, 밝음과 따뜻함이며, 풍성한 소망과 축복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대보름날(2월 9일)이 내일 모레로 다가왔다. 이날만은 추위로, 경제 한파로 옹송그렸던 우리 모두의 가슴이 활짝 펴졌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2009.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