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로 이동해 오랜만에 기차를 탔습니다. 며칠 동안의 추위로 막 피어나던 목련이 얼었던 관계로 까맣게 모두 동해를 입었습니다. 어제는 완도에서 강진, 순천으로 이동하는 중에 진달래꽃의 해사한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북으로 갈수록 개나리를 제외한 꽃들이 추위 때문에 잔뜩 웅크려 있어 보기에도 딱할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봄이라 꽃이 제법 많이 보입니다.
낮에는 전주로 이동하여 비빔밥을 먹은 뒤,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 객사까지 혼자 부지런히 다녀오고나서 지난 여름 문을 안열어 못본 혼불 최명희 문학관을 보고, 한옥마을을 실컷 돌아다닌 후, 한지박물관에서 종이 한 장 만들고, 지금은 충남 보령에 있는 대천 한화리조트에서 사우나를 끝내고 방에 가서 축구를 보러 가는 중 이 컴을 만나 천원짜리 한 장 넣고 임시 보관함에 있는 난을 꺼내 이렇게 올립니다.
♧ 자란행紫蘭行
한번 꽃을 피우고 나면
가을이 오고
한 해가 기우는데
거리마다 외투깃 슬몃 올리는
허허한 시간
가을걷이 끝내고
혼불만 붙어 있는 빈 몸
더 밝은 빛을 위하여
속울음을 잠재우나니
자란자란 차오르는 보랏빛 그리움
따스한 대지의 보드라운 살에
꼬옥 꼭 박아 놓고 있나니.
♧ 난초꽃 피면
봄이 오면
난초꽃 피고
그대 얼굴을 열면
옷깃에 찬 추위가 별것이랴
남녘에서 제비 떼 날아와
잘한다, 잘한다! 우지지는데
뿌리까지 흔들어
종소리 울리는
그대 가슴에 꽃이 피리야
보랏빛 종소리로 울리리야
이것 봐, 이것 봐라! 하며
고갤 쳐드는
저 여린 꽃대궁 어이하리야
그대 가슴에 피는 저 꽃을 어이하리야.
♧ 소심素心
꽃등을 밝히고 있는
그대의 새끼손가락
속눈썹만한 기다림이
따뜻이 화해하는,
은근하게 던지는 곁눈질에
흔들리는 작은 공간
가슴 여밀 때마다
열리는 흰 비늘 같은 아침.
♧ 희란姬蘭
그미는
그리움 같다
상큼하고 싱그럽고 은근하고 정스럽고 은은한.
그니는
바람만 같다
조금은 쓸쓸하고 담담한 청솔가지 바늘잎 사이.
그녀는
안개만 같다
그믐달 비어 있는 자리마다 차오르는 슬픈.
그네는
첫눈만 같다
소슬하고 설레이고 황홀하고 숫스럽고 빛나는.
♧ 잉태
뜨겁게 육신을 태워
소신공양을 하듯
온몸이 비틀리고
정신이 혼미해져
자궁 속에
보이지 않는 햇빛의 불타는 손길이
점지하는
수많은 날의 입덧과
아픈 속살의 아찔함으로
그대 가슴에
등 하나 밝히기 위하여
한여름과 가을과 한파를 꿈으로 달려
이제 춘삼월 복사꽃 하늘
찬란하고 눈부신 꽃등 하나
그대 앞에 올리려
나 이제 쇠잔한 몸으로
혼절하며 혼절하며
다 벗고 그대 앞에 서네.
'洪海里와 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 韓國春蘭 (0) | 2011.02.08 |
---|---|
[스크랩] 동양란과 홍해리 선생의 애란시(3) (0) | 2009.04.07 |
[스크랩] 동양란과 홍해리 선생의 애란시(1) (0) | 2009.04.07 |
[스크랩] 난전시회와 홍해리 선생의 애란시 (0) | 2009.04.07 |
난蘭과 시詩 (0) | 2009.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