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와 蘭

[스크랩] 동양란과 홍해리 선생의 애란시(3)

洪 海 里 2009. 4. 7. 05:42

 

길었던 4박5일의 수학여행도 끝나고 집에 와서 모처럼 몇 시간 쉬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이제 입학 한 달을 넘긴 고등학교 1학년 새내기들을 데리고

완도로 배를 타고 나가, 순천만에서부터 경기도 포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회화 학습까지 겸한 여행을 통해 요즘 10대를 이해하려고 해보았습니다.


어제는 고려대학교에 들러 이들에게 학습 동기를 유발시키는 계기를 마련

하기 위해 멋쟁이 대학생 홍보대사들에게 부탁해서 반별로 근사한 대학교

캠퍼스를 구경시켰고, 학생 구내식당에서 식사도 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대문형무소에 들러 독립운동을 위해 순국했거나 고초를 겪은 선조들의

고통의 현장을 직접 보도록 하였는데, 뭔가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것은 정리가 안돼 다시 홍해리 선생님의 애란시와 앞서 열렸던 동양란

전시회의 사진과 함께 올립니다.

 


♧ 난초 한 촉

 

두륜산 골짜기 금강곡金剛谷으로

난초 찾아 천릿길 달려갔다가

운선암雲仙庵에 하룻밤 몸을 포개니

기웃기웃 달빛이 창문을 때려

밖에 나와 숲속의 바람과 놀 때

잠 못 들던 사미니 내 귀를 잡네

물소리도 날아가다 엿보고 가고

난초蘭草꽃 깊은 골짝 암자 속에서

하늘땅이 초록빛 독경을 하네.


 

♧ 난蘭 앞에 서면

 

천상천하의

바람도 네 앞에 오면

춤, 소리 없는 춤이 된다

시들지 않는 영혼의,

적멸의 춤이 핀다


별빛도 네게 내리면

초록빛 에머럴드 자수정으로

백옥으로 진주로

때로는 불꽃 핏빛 루비로 타오르고

순금이나 사파이어 또는 산호

그렇게 너는 스스로 빛나는데


난 앞에 서면

우리는 초라한 패배자

싸늘한 입김에 꼼짝도 못한다

언제 어디 내가 있더냐

일순의 기습에 우리는

하얗게 쓰러진다

 


천지가 고요한 시간

우리의 사유는 바위 속을 무시로 들락이고

때로는 하늘 위를 거닐기도 하지만

무심결에 우리를 강타하는

핵폭탄의 조용한 폭발!


드디어 우리는

멀쩡한 천치 백치 ……

가장 순수한 바보가 된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춤사위에 싸여

조용히 조용히 날개를 편다.

 

 

♧ 素心開花소심개화

 

한가을 둥근달

맑은 빛살로

바느질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밤 도와 마름하여


첫날밤 지샌

새댁

정화수

앞에 놓고

두 손 모으다


바람도 자는데

바르르

떠는

하늘빛 고운 울음

영원 같은 거


엷은 고요

무봉천의 한 자락

홀로 맑은


지상의 한뼘 자리

젖빛 향기 속

선녀 하강하다.


 

♧ 蘭아 蘭아  

 

I

뼈가 없는 네게는

뼈가 있는데,


뼈가 있는 내게는

뼈가 없구나.


II

너는

겨울밤의 비수요

대추나무 가시

차돌멩이요

불꽃이다.


 

III

네게는

햇빛으로 피는 평화

햇빛으로 쌓는 역사

햇빛으로 웃는 사랑

햇빛으로 아는 진실

햇빛으로 보는 영혼

햇빛으로 타는 침묵

햇빛으로 엮는 약속이 있다.


네게는

바람으로 오는 말씀

바람으로 맞는 기쁨

바람으로 크는 생명

바람으로 얻는 휴식

바람으로 벗는 고독

바람으로 거는 기대

바람으로 빗는 무심이 있다.


네게는

물로 닦는 순수

물로 아는 절대

물로 사는 청빈

물로 비는 허심

물로 우는 청일

물로 빚는 여유

물로 차는 지혜가 있다.

 


 

IV

네 발은 늘 젖어 있고

내 손은 말라 있다.


마른 손으로

너를 안으면

하루의 곤비가 사라지고,


먼 산 위에 떠돌던 별, 안개

바람이 네 주변에 내려,


내 가는 손이 떨리고

마취된 영혼이

숨을 놓는다.


고요 속에 입을 여는

초록빛 보석

살아 있는 마약인 너, 


십년 넘게

네 곁을 지켜도 너는

여전히 멀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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