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변잡기·洪錫珉 기자

<酒변잡기> 대기업 '상생 막걸리' 빚어야

洪 海 里 2010. 6. 21. 06:30

 

대기업 '상생 막걸리' 빚어야 / 洪錫珉 기자

 

양조장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주말 시골 읍내의 수런거림이 그곳까지 따라왔다. 미닫이를 드르륵 열고 들어갔더니 막걸리 냄새가 확 풍긴다. 같은 곳에서 술을 만들고 판매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오전이었지만 한잔 걸친 듯 주인의 얼굴이 불그레하다. 벽에 걸린 칠판에 이름과 남은 술의 양이 적혀 있다. 타지에 사는 자식들이 미리 막걸리 값을 치르고 가면 고향에 남은 아버지는 아무 때나 와서 그냥 술을 가져간다고 했다. 막걸리 두 통을 검은 비닐봉투에 받아 들고 나오면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얼마 전 찾아갔던 충북의 한 양조장의 모습이다. 이 풍경에서 2010년 대한민국 막걸리를 상징하는 두 가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영세함이다. 이 양조장에선 3명이 양조에서 판매까지 모든 작업을 다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전국에서 533개의 막걸리 업체가 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매출액이 10억 원 이상인 업체는 30개로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연 매출액이 1억 원이 안 되는 곳이 67%에 이른다.

 

또 다른 하나는 그리움이다. 일부에선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지만 막걸리에는 여전히 고향의 이미지가 겹친다. 요즘은 업무상 만나는 자리에서도 막걸리를 반주로 곁들일 때가 많은데 으레 다들 막걸리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다 반쯤 마시고 물을 채웠던 기억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후반 학번인 기자는 대학 축제 때 잔디밭에 앉아 떡볶이며 순대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최근 막걸리의 폭발적 성장에는 그동안 홀대했던 우리 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막걸리는 우리에게 잊었던 추억의 다른 이름이다.

최근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가 뜨거운 논란이다. CJ제일제당 오리온 진로 롯데 농심 샘표식품 등 식품 분야에서 쟁쟁한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거나 참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은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시장이 미미할 때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붐이 일고 나니까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동네 구멍가게가 몰락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일부에선 정부가 나서서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기업 참여에 대한 원천적 봉쇄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방 막걸리 양조장은 저마다 양조 기술은 갖고 있지만 마케팅이나 전국 판매는 불가능에 가깝다. 월드컵을 앞두고 농식품부가 ‘16강 막걸리’를 선정해 발표했지만 기자가 사는 동네 슈퍼마켓에선 단 한 종도 구할 수 없다.

대기업이 막걸리의 유통 분야에 참여한다면 소비자 편익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대기업이 직접 양조하고 대량 생산해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지방 양조장을 고사시킬 우려가 있다.

대기업의 막걸리 시장 참여는 전국의 이름 없는 양조장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막걸리의 영세함을 극복하고, 그리움은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