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시집『금강초롱』(2013)

<시> 담쟁이의 길

洪 海 里 2011. 3. 19. 06:46

 

담쟁이의 길

 

洪 海 里

 

오직

길이라곤 벽뿐이어서

아니면 살아 있는 나무들이라서

담쟁이는 타고 오를 수밖에 없다

밤낮없이 수직으로 기어가는 길

높을수록 바람은 거세지만

타고 오르는 힘은 더욱 푸르다

하늘이 머리 위에 있으니

숨차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바람아 불어라

흔들리는 하늘길

홀로 가는 곳

길은 늘 시작이다

끄트머리는 끝의 머리이기 때문

입때껏 바람결은 부드러웠지만

벽이란 것은 쩌개지고

나무는 눈 바람에 꺾이기 마련이다

담쟁이는 맨발이라서 하늘에 오를 수 있다

너도 맨 정신이면

하늘에 닿을 수 있으리라

느릿느릿 천천히 맨발로 가라

아득한 끄트머리를 위하여

그러나 벽아 또는 나무야

너를 타고 오르는 내가 미안하다.

 

 

 

  * 담쟁이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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