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시> 밥

洪 海 里 2011. 4. 20. 04:28


洪 海 里




밥은 금방 지어 윤기 잘잘 흐를 때
푹푹 떠서 후후 불며 먹어야
밥맛 입맛 제대로 나는 법이지
전기밥솥으로 손쉽게 지어
며칠을 두고 먹는 지겨운 밥
색깔까지 변하고 맛도 떨어진
그건 밥이 아니다 밥이 아니야
네 귀 달린 무쇠솥에 햅쌀 씻어 안치고
오긋한 아구리에 소댕을 덮어
아궁이에 불 지펴 나무 때어 짓는
아아, 어머니의 손맛이여,
손때 묻어 반질반질한 검은 솥뚜껑
불길 고르다 닳아빠진 부지깽이
후둑후둑 타는 청솔가리
설설 기는 볏짚이나 탁탁 튀는 보릿짚
참깻단, 콩깍지, 수숫대
풍구 바람으로 때던 왕겨 냄새 그리운 날
냉장고 뒤져 반찬 꺼내기도 귀찮아
밥 한 공기 달랑 퍼 놓고
김치로 때우는 점심 홀로 서글퍼
석달 열흘 가도 배고프지 않을
눈앞에 자르르 어른거리는 이밥 한 그릇
모락모락 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처럼
아아,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
그러나 세상은 그게 전부가 아닐세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던가
새들은 나무 열매 몇 알이면 그만이고
백수의 제왕도 배가 차면 욕심내지 않네
썩은 것도 가리지 않는 청소부
껄떡대는 하이에나도 당당하다
배고픈 자에겐 찬밥도 꿀맛이요
밥 한 술 김치 한 쪽이면 임금님 밥상
그러니 지상은 늘 우리의 만찬장이 아닌가.

                          -시집『황금감옥』(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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