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시> 연가

洪 海 里 2011. 4. 20. 10:36

 

연가

洪 海 里

 


맷방석 앞에 하고
너와 나 마주앉아 숨을 맞추어
맷손 같이 잡고 함께 돌리면
맷돌 가는 소리 어찌 곱지 않으랴
세월을 안고 세상 밖으로 원을 그리며
네 걱정 내 근심 모두 모아다
구멍에 살짝살짝 집어넣고 돌리다 보면
손 잡은 자리 저리 반짝반짝 윤이 나고
고운 향기 끝 간 데 없으리니
곰보처럼 얽었으면 또 어떠랴 어떠하랴
둘이 만나 이렇게 고운 가루 갈아 내는데
끈이 없으면 매지 못하고
길이 아니라고 가지 못할까
가을가을 둘이서 밤 깊는 소리
쌓이는 고운 사랑 세월을 엮어
한 生을 다시 쌓는다 해도
이렇게 마주앉아 맷돌이나 돌리자
나는 맷수쇠 중심을 잡고
너는 매암쇠 정을 모아다
설움도 아픔까지 곱게 갈아서
껍질은 후후 불어 멀리멀리 날리자
때로는 소금처럼 짜디짠 땀과 눈물도 넣고
소태처럼 쓰디쓴 슬픔과 미움도 집어 넣으며
둘이서 다붓 앉아 느럭느럭 돌리다 보면
알갱이만 고이 갈려 쌓이지 않으랴
여기저기 부딪치며 흘러온 강물이나
사정없이 몰아치던 바람소리도
추억으로 날개 달고 날아올라서
하늘까지 잔잔히 어이 열리지 않으랴.


         - 시집『봄, 벼락치다』(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