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집중조명 자료

<대담> 명창정궤明窓淨几를 벗 삼아 / 박수빈(시인)

洪 海 里 2012. 2. 5. 06:50

<대담>

 

 

명창정궤明窓淨几를 벗 삼아

 

 

박 수 빈(시인)

 

  북한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우이천牛耳川을 따라 걸으며 시수헌詩壽軒을 방문한다. 시수헌은 홍해리 선생님의 집필실이자 월간『우리詩』의 편집실이다. 밖은 엄동설한이었으나 실내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아 아늑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붉은 색 니트에 청바지차림의 선생님 곁에 빼곡히 책들이 꽂혀 있고 가지런히 배낭이 놓여 있다. 배낭을 책가방처럼 메고 오늘도 학생같이 등교하셨으리라. 악수를 나누는 손에서 온기가 전해진다. 열정이 있는 선생님을 뵈며 나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거꾸로 가는 숫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손수 끓여 주시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돌리자 시수헌이라 쓰인 액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뜻을 여쭤본다. 햇빛이 잘 비치는 창밑에 놓여 있는 깨끗한 책상으로 선비의 서재를 일컫는 명창정궤明窓淨几와 연관을 지어 말씀하신다. 책 읽고 글쓰기 좋고 담소를 나누며 시간 보내기 좋은 이곳의 이름에 제격이다. 편안하고 정겨워서 두서없이 이야기가 오간다. 어쩌면 선생님과 나는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서 일방적인 순서에 따라 묻고 답하는 딱딱한 인터뷰로 못을 박지 않고 실마리를 풀어 나갔는지 모르겠다.

 

박수빈 : 선생님께서는 새벽형이신가 봐요. 굉장히 부지런하십니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의 시각들이 저는 쿨쿨 자고 있을 때예요.

 

홍해리 : 새벽 3시에 기상해서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듭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집 뒤 산에 있는 명성사明星寺라는 절에서 새벽 예불 드리는 소리에 늘 잠을 깼습니다. 대학 시절 하숙할 때도 그 버릇이 그대로 이어져 같은 방을 쓰는 친구에게 눈총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녀석이 눈으로 총을 마구 쏘아 대서 늘 맞기만 했습니다. 어릴 적 일찍 일어나던 습관을 평생 못 버린 것이 지금까지 몸에 배어 있습니다. 새벽에 홀로 책상 앞에 앉으면 온 세상과 모든 시간이 내 것인 듯한 착각 속에서 생각을 모으게 됩니다. 아, 내가 고요 속에 홀로 깨어 있구나 하는 느낌이 참 좋습니다. 그 시각의 적막과 고독을 내 것 삼아 가슴에 품은 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몇 년 전 허리수술을 받은 후부터는 새벽에 규칙적으로 한 시간씩 허리 강화 운동을 하고 아침을 맞아 '홀로'인 나를 버리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박수빈 : 건강 관리하시는 모습이 젊게 사시는 비결인가 봅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청춘기와 문학 입문기가 궁금해집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해 볼까요? 선생님께선 1942년(실제는 1941년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1964)하고 1969년 시집『투망도投網圖』를 상재하면서 시인활동을 하셨는데요. 어떻게 문학을 하게 되셨나요? 당시 선생님께 문학적 영향을 준 스승이 계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홍해리 : 대학에서 김종길 교수에게 19세기 영미시, 20세기 영미시와 T. S. 엘리엇을 배우면서 시의 맛을 알았어요. 어려서 한학을 하신 안동 선비의 꼬장꼬장한 김종길(김치규 교수) 시인은 올해 87세인데 그때는 30대 후반의 청청한 학자요 시인이었습니다. 한편 국문과 교수였던 조지훈(조동탁 교수) 시인에게 시론과 현대문학을, 박성의 교수에게서 가사문학을 배웠지요. 검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강의실을 드나들던 조지훈 시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분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4년 뒤인 1968년 지병으로 48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 분에게서 배운 것이 내가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두 분 시인에게서 '시의 뼈'를 읽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수빈 : 말씀을 듣고 보니 청청한 학자와 검은 두루마기의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이러한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선생님께서도 한결같이『우리詩』를 아끼고 계신 듯합니다. 월간『우리詩』의 산파이며 산 증인이신데요. 이제야 뒤늦게 근황을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홍해리 : 우리시회(처음에는 '우이동시인들')가 태동한 것이 1986년이었고 이듬해부터 동인지『우이동』을 내고 시낭송회를 시작했으니 역사가 꽤 되었지요. 나이 스물다섯이 넘으면 한창 눈도 환하고 귀가 시퍼런 청춘인데 우리시회가 당분간 시끄럽게 삐거덕거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양심과 책임이 강조되는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인다운 '참시인'이 그립습니다.

  요즘은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시와 시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시간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물이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깨끗이 정화시키듯 우리시회도 비 온 뒤의 땅처럼 더욱 깨끗하고 굳은 바탕에 발을 딛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박수빈 :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무거워지는 듯해서 잠시 화제를 바꾸어 볼까요? 선생님께서 발표하시는 많은 시들에서 자연과 조응하면서 낭만적인 서정성이 느껴집니다. 요즘 시적 화두는 무엇인지요?

 

홍해리 :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시간을 자연과 함께 하면서 자연에 가까운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를 쓴다고 해도 한 송이 꽃을 보면 부끄럽지요.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면 또 부끄럽지요. 한 포기 작은 풀을 보면 창피한 생각이 들지요. 한 그루 나무를 보면, 바위를 보면, 산을 보면, 호수나 강을 보면, 아니 바다를 보면 시인의 기는 팍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런 기를 살리는 것이 시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다 자연으로 돌아가야지요. 바로 '자연'입니다, 요즘 나의 화두는.

 

박수빈 : 말 그대로 자연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대로 놔두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거슬러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시를 읽다보면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시「황태의 꿈」중에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는데요. 선생님께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홍해리 : 힘들었던 때가 언제 있었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늘 힘들었고 힘들지 않았던 듯합니다. 사는 일이 언제나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일 뒤에는 반드시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고 어려운 일을 이겨내면 신나는 일이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요? 이제까지 나를 뒤돌아보면 늘 주위에 좋은 분들이 있어 도와주고 이끌어 주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힘들 때는 내가 내게 기대 등을 비비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니 꽃은 꽃이었고 똥은 똥이었습니다. 그런 생각과 마음가짐은 앞으로도 아마 변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수빈 : 우문현답이셔요.(웃음)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자선시를 뽑아주세요.

 

홍해리 : 시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과 독자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집중조명에 응하면서 대표작을 10편 뽑아 달라 해서 첫시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쓴 글 가운데 10편을 고르긴 했지만 그게 가장 좋아하는 시는 아닌 듯합니다. 대표작과 좋아하는 시가 다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굳이 '가장'이란 수식어를 붙여 고른다면 아주 짧은 시로 최근에 쓴「금강초롱」을 들겠습니다.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초롱꽃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가 전문입니다. 어쩌면 눈물 나는 슬픈 사랑노래라 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것을 늘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어떤 것일까 파고 또 파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허망한 그림자만 흐릿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나는 금강경을 파면서 남은 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 쇠북은 내가 죽어야 울리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때도 울리지 않겠지요.

 

박수빈 :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라는 표현이 절절합니다. 요즘 항간에 난무하는 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러한 시단에 대한 견해를 여쭤봅니다.

 

홍해리 : 오랫동안 우이동 골짜기에서만 지내다 보니 시장통의 소식에 어둡고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무슨 물건이 잘 팔리고 누가 돈을 많이 벌고 시장통의 어떤 음식이 맛이 있는지도 모른 채 산나물만 씹고 있습니다.

그래도 석달 열흘 굶주린 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쏘다니고 있을 것이고 썩은 고기를 찾아 밤낮없이 헤매 다니는 하이에나도 많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시장바닥의 본 모습일 테니 그러려니 생각합니다. 시라는 것이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이어서 이런 시 저런 시가 있을 수 있겠지요. 모두가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면 좋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어 닥치는 바람에 휩쓸려 쭉정이는 날아가 버리고 말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람이란 항상 새롭게 불어오지만 바람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속성이 있습니다. 시로서, 시인으로서 남을 것은 남고 사라질 것은 사라지는 것이 자연현상이 아니겠습니까?

 

박수빈 : 만약에 다시 인생을 사신다면 또 시인이 되시겠어요?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홍해리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아마 인생人生이 아니라 식생植生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청청한 그늘이나 드리워 지치고 고단한 이들의 쉼터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이른봄에 피어나는 꽃다지로 푸른 하늘을 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수빈 : 참으로 식물성이십니다. 꽃에 관한 시들이 많은 이유를 알겠어요. 난을 주제로 한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저 무한천공으로」라는 노래가 들리는 듯합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홍해리 : "시인은 감투도 명예도 아니다/ 상을 타기 위해, 시비를 세우기 위해, 동분하고 서주할 일인가/ 그 시간과 수고를 시 쓰는 일에 투자하라/ 그것이 시인에겐 소득이요, 독자에겐 기쁨이다/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이 필요할 따름이다/ 변두리 시인이면 어떻고 아웃사이더면 어떤가/ 목숨이 내 것이듯 시도 갈 때는 다 놓고 갈 것이니 누굴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시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상으로 상을 당할 일도 아니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그것이 시인이 받을 보상이다. -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시집『비밀』의 ‘시인의 말’ 끝 부분)에서 옮김.

 

  오로지 이런 생각으로 계속 시를 쓰면서 시와 함께 재미있게 놀려고 합니다. 한가로운 구름장처럼, 들판에 거니는 외로운 학처럼 유유悠悠하며 자적自適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다섯 권의 시집을 더 내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박수빈 : 말씀을 듣고 보니 거창한 설계 보다 꾸준한 자세를 명심하게 됩니다. 긴 시간 선생님을 괴롭혔습니다. 대담을 마칠 때가 되었군요. 마지막으로 뒤따르는 후배 시인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멋지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홍해리 : "이름 없는 풀이나 꽃은 없다, 나무나 새도 그렇다/ 이름 없는 잡초, 이름 없는 새라고 시인이 말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모든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다/ 이름없는 시인이란 말이 있다/ 시인은 이름으로 말해선 안 된다 다만 시로 말해야 한다/ 이름이나 얻으려고 장바닥의 주린 개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기웃대지는 말 일이다/ 그래서 천박舛駁하거나 천박淺薄한 유명시인이 되면 무얼 하겠는가/ 속물시인,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꺼귀꺼귀하는 속물이 되지 말 일이다/ 가슴에 산을 담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스럽게 사는 시인/ 자연을 즐기며 벗바리 삼아 올곧게 사는 시인/ 욕심없이 허물없이 멋을 누리는 정신이 느티나무 같은 시인/ 유명한 시인보다는 혼이 살아 있는 시인, 만나면 반가운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될 일이다."

-「고운야학孤雲野鶴의 시를 위하여」(시선집『시인이여 시인이여』의 '시인의 말')의 마지막 부분.

 

  이 말씀이 후배시인들에게 어떤 귀감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싫고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산문을 써 달라 하면 늘 거절하느라 애를 먹는 내가 오늘은 너무 수다스러웠습니다. 박 시인이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라며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수빈 : 귀한 시간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자주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시수헌을 나와 고개를 드니 눈앞에 북한산 능선이 펼쳐진다. 웅장한 산세가 며칠 전 내린 눈을 이고 있다. 내 눈길이 하얀 눈을 따라간다. 눈을 밟는다. 발자국에도 표정이

있는 걸까 찍힌 흔적들을 되새기며 속이다 맑아지는 느낌이다. 문득 오늘 홍해리 선생님과 나눈 발자국과 서산대사의 시가 오버랩이 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참으로 서늘하고 호젓한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순간이다. 우이천변에 벚꽃이 필 때도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한다. 내 그 때를 잊지 않고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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