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새·섬·그림·여행·음식

곤줄박이

洪 海 里 2012. 2. 22. 15:53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새로 참새를 지목하기 쉬운데 실은 참새보다도 더 흔한 새가 박새다. 인가 주변이나 산림 등지에서 작은 곤충이나 식물의 씨앗을 먹고 나무 구멍이나 돌 틈, 인공 새집이나 건물 틈에서 번식하는 이 작은 새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여러 지역에 분포하는 텃새로 산림이나 공원의 생태 조사 때마다 우점종의 앞 순위에 오르는, 가장 흔한 새로 확인되고 있다. 박샛과의 새들 중에 곤줄박이라는 새가 있다. 뺨과 이마는 하얗고, 정수리와 멱엔 검은 줄무늬가 있으며 목 뒤, 가슴과 배로 이어지는 화려한 오렌지색은 수수한 시골 처녀 같은 여느 박새와 달리 곤줄박이를 이국적인 새로 느끼게까지 한다. 곤줄박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외모도 한몫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유의 습성이다. 먹잇감이 귀해지는 겨울에 곤줄박이들은 애완견처럼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먹잇감을 받아먹고 새끼를 키우는 번식기엔 우체통, 전신주, 헛간, 부엌, 심지어 아주 조금 열어 놓은 창문 틈에 둥지를 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곤줄박이’ 혹은 ‘곤줄매기’로 불려지는 이놈의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로, 이 중 ‘곤’은 검과 같이 까맣다(黑)라는 ‘곰’에서 왔다. ‘박이’는 무엇이 일정 장소에 박혀 있는 사람, 짐승, 물건을 나타낼 때 쓰는 접미사이니 ‘곤줄박이’는 검정색이 박혀 있는 새란 뜻이다. ‘곤줄매기’의 ‘매기’는 ‘멱이’에서 나온 말로 멱은 목앞을 말한다. 곤줄매기는 炷� 검은 새라는 의미다. 혹자는 전통혼례에서 새색시 얼굴에 바르는 ‘곤지’처럼 붉고 예쁜 점이 새에 박혀 있다 하여 ‘곤지박이’가 ‘곤줄박이’로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곤줄박이의 한자 이름은 산작(山雀)인데 산에 사는 참새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알록달록한 박새(Varied Tit)라고 불린다. 산사의 귀염둥이 곤줄박이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펼쳐진 천수만 간척지가 내려다보이는 도비산(島飛山) 중턱의 부석사를 찾았다.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산사의 겨울밤은 모든 것이 익숙하지 못한 여행객에겐 더더욱 길게 느껴진다. 한지가 발라져 있는 창문에 달빛이 드리워져 창이 스탠드등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이른 새벽, 잠들어 있는 생명을 조심스레 깨우기 위한 산사의 종소리가 점차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여명을 기다리는 나의 조바심 때문일까? 곤줄박이와 박새들이 이른 새벽부터 절집 주변을 맴돌며 저희들끼리 재잘거리며 식구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이른 아침 절집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동트는 이른아침 산사의 마당에서 땅콩 조각을 올려놓은 기자의 손으로 날아든 귀염둥이 곤줄박이. 동이 트고 새벽 예불을 마친 스님이 도량을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스님 주위로 곤줄박이들이 모여들어 어린아이가 보채듯 “쓰쓰비비, 씨이〜 씨이〜” 울어댄다. 스님이 이들을 달래듯 몇 알의 땅콩을 손위에 올려놓자 주저없이 손끝으로 날아와 땅콩을 입에 물고는 포르르 나뭇가지 위로 올라 맛나게 먹어 치운다. 내 손에 날아든 곤줄박이들은 사진에 찍히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에 찾아온 횡재를 즐기기에 정신이 없다. 곤줄박이는 배불리 먹이를 먹고 남는 먹이를 나뭇가지나 낙엽 밑에 숨겨놓는다. 절집의 새벽식사를 주변에서 지켜보던 겁 많은 박새는 곤줄박이가 땅콩을 숨긴 장소를 주의깊게 살펴보다 곤줄박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잽싸게 땅콩을 훔쳐낸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란 속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곤줄박이와 박새는 겨울 내내 함께 무리를 이루는데 겨울철 양식을 얻어먹는 박새는 곤줄박이를 동무로 둔 덕을 톡톡히 본다 하겠다. 곤줄박이는 영리해서 재롱을 잘 피우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많은 귀여움을 받아왔다. 이 새가 산이나 들에서 사는 야생조류가 아니고 관상용 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곤줄박이가 우리 손에 내려앉으며 보여주는 ‘믿음’은 이들에게 보답으로 주어지는 몇 알의 땅콩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값진 새해 선물이지 않을까? 이종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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