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신작시 5편

洪 海 里 2012. 3. 16. 16:50

 

월간 ‘우리詩’ 3월호 ‘집중조명 홍해리 시인(Ⅱ)’에 신작시 다섯 편이 실렸다.

 

특집 '집중조명 홍해리 시인'은 지난 2월호에 이어

 

신작시 : ‘편지’외 4편과

신작시 해설 : 충만과 허무 사이/ 황정산

시인론 : 해리海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찾아서/ 신현락

시론 : 명창정궤明窓淨几의 시를 위하여/ 홍해리

시의 길, 시인의 길/ 홍해리

홍해리 자술연보

홍해리 연구서지를 실었다.

 

그 중에 신작시로 실린 시 5편과 함께 지난 주말 학생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렸던

제주동양란회 22회 난전시회에서 찍은 난과 함께 싣는다.

 

 

 

♧ 편지 - 홍해리

 

절정에 닿기 전 내려올 줄 아는 이

그의 영혼 내 처녀처럼 아름답다고

눈물 찍어 그대에게 연필로 쓴다.

 

산에 오른다고 바랑을 메고 다니면서도

아래 너른 세상을 어찌 못 보았던가

꽃도 활짝 피면 이미 지고 있어

넋이 나간 빈 집인데

나의 마음 한자락 한자락마다

고요처럼 그윽한 충만이었던가

한때는 정점이 가장 높고 너른 세상

지고의 삶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절정이란 한 점, 찰나일 뿐

위도 아래도 없고 앞도 뒤도 없다

바람 거세고 모래알 날리는 그곳

그립지 않은 것은 마음이 비어 있기 때문

사랑이란 찰나의 홀림

절정에 이르지 말고

불타는 성전이나 구경할 일이다.

 

나의 전부인 너를 사랑한다 자연이여, 우주여

이것이 시에 대한 내 영혼의 고요 문법이라고

그대에게 띄운다.

 

 

 

 

♧ 소금과 시

 

소금밭에 끌려온 바다가

햇볕과 바람으로 제 몸을 다 버리고 나서야

잘 여문 소금이 영롱하게 피어난다.

맛의 시종인, 아니 황제인 소금의 몸에서

밀물과 썰물이 놀고 있는 소리 들린다.

 

소금을 기르는 염부의 등을 타고 흘러내린

수천수만 땀방울의 울력으로

바다의 꽃, 물의 사리인

가장 맛있는 바다의 보석이 탄생하듯이,

 

시인은 말의 바다를 가슴에 품고

소금을 빚는 염부,

몇 달 몇 년이 무슨 대수냐면서

한 편의 시는 서서히 소금으로 익어간다.

 

어둔 창고 속에서 간수가 빠져나가야

달고도 짠 소금이 만들어지듯

서둘지 마라,

느긋하게 뜸을 들이며

가슴속 언어산의 시꽃은 열매를 맺는다.

 

 

 

 

♧ 자짓빛 상상

 

그녀는 가지를 보면 자지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녀 차지는 되지 않는다

약삭빠르고 헤픈 년들이 워낙 많아서

뒷전에서 침이나 삼키다 파지가 되고 만다

 

하지夏至면 축 늘어진 채 당당한 한때

잘생긴 가지

자줏빛으로 반짝이는 가지

갖고 싶다 따고 싶다 안고 싶다 먹고 싶다 하고 싶다

꼭지를 딸까 배꼽부터 씹을까 가운델 뭉텅 베어물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막막해지고 싶다

적막강산이 되고 싶다

 

젖가슴 풀어헤치고 다리속곳 벗어던지고

가시고기처럼 알을 슬고

바위 하나 품고 싶은

가지가지 생각에 가지나무에 목을 맬 수도 없는

그녀는 자짓빛 상상이나 하고 있다.

 

 

 

 

♧ 달을 품다

 

눈이 부셔 잠을 깨니

미끈유월 스무하루

새벽 한 시

눈이 아팠다

열려진 창문으로 달이 들어와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걸어온 것이었다

단잠에 든 내 눈을 깨우고

슬몃 눈웃음을 띄고 있다

내가 못 가니

네가 왔구나

그래 나는 무작정 달빛 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하늘바다에 안긴 듯 황홀했다

향기로운 네 손에 이끌려

밤하늘 풀밭의 양 떼 모두 잠이 들고

별 몇 개만 보초인 듯 눈을 껌뻑이고 있다

백중사리 지나 한가위 때나 너를 볼까 했다

노란 네 얼굴이 한층 명명청청明明淸淸해지면

그때 널 보고 싶었지만

짐짓 모른 체 할 수 없어 너를 안으니

어디선가 질척질척 고양이 우는 소리

들렸다

 

천강 만산千江萬山을 품고 있는

저 환한 고요!

 

 

 

 

♧ 봄, 날아오르다

 

두문불출의 겨울 적막의 문을 두드리던 바람

부드러운 칼을 숨기고 슬그머니 찾아왔다

아침 밥물을 잦히는 어머니의 손길로

물이 오르는 들판 어디선가 들려오는 칼질소리

금세 봄은 숨이 가빠 어지럽다

오색찬란 환하다, 망연자실

바라보면 울고 싶어지는 희다 못해 푸른 매화꽃

저 구름 같은 입술 젖어 있는 걸 보라

나무들마다 아궁이에 모닥불 지피고

지난 삼복에 장전한 총알을 발사하고 있다

봄 햇살은 금빛 은빛으로 선다

봄은 징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로 온다

귀가 뚫린 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꽃집에 온 것마다 서로 팔을 걸고 마시다

목을 끌어안고 꿀을 빨고 있다

무릎에 앉은 채 껴안고 마셔라! 마셔라!

입에서 입으로 꽃술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폭탄주에 금방 까무러칠 듯 봄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에 어찌 끝이 있다 하는가

시작이 있을 뿐

겨울이 간 것이 아니라 봄이 온 것이다

파 · 릇 · 파 · 릇 숨통을 트고 잠시 멈추어 숨을 가다듬는

저 푸르러지는 산야로

풍찬노숙하던 환장한 봄이 날아오르고 있다.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시화 및 영상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산수유 그 여자  (0) 2012.03.22
<시> 꽃 지는 날 외 10편  (0) 2012.03.21
<시> 시집『애란愛蘭』(1998)의 蘭詩 7편  (0) 2012.03.12
<시> 투망도投網圖  (0) 2012.03.10
[스크랩] 겨울밤에 깨어서  (0) 201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