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시> 시집『애란愛蘭』(1998)의 蘭詩 7편

洪 海 里 2012. 3. 12. 05:06

 

 

“난초가 깊은 산속에 나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도를 닦는데도 이와 같아서 궁하다고 하여 지절志節을 고치지

아니하는 것이다.”  - 공자가어(孔子家語)

 

 

 

<시집>『愛蘭』의 서문

 

난인을 위하여

 

  난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난을 기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산다고 한다. 
인격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 30년 가까이 같이 살아오면서도 나는 아직 난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간에 지은 난에 대한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한다.


 난은 꽃과 향도 좋지만 변함없는 초록빛 잎만도 일품이다. 
난은 기다림을 가르쳐 준다. 은근과 끈기를 익히게 한다. 

무심에 젖게 한다.
가만히 있어도 난향은 소리없이 귀에 들리고 가슴에 온다. 
움직이지 않는 그 춤은 언제나 눈으로 들고 마음에 찬다.
아무래도 나는 식물성이다. 
한 포기 풀로 풀만 바라보며 사는 청복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단기 4331년 한여름에

                                                                        洪 海 里 적음.


 

 

난꽃이 피면

 

진초록 보석으로 날개를 달고
눈을 감고 눈을 뜬다
만 가지 시름이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장 지순한 발바닥이 젖어 있다
내장산 비자림 딸깍다릴 지날 때에도
영원은 고요로이 잠들어 있었거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투명한 이른 봄날 이른 아침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女人의 中心
실한 무게의 男根이 하늘에 걸려 있다. 
                                   

 

 

 

무위無爲

 

너는 
늘 
가득 차 있어
네 앞에 서면
나는
비어 있을 뿐 ㅡ
너는 언제나 무위의 시 
무위의 춤
무위의 노래
나의 언어로 쌓을 수 없는 성
한밤이면
너는 수묵빛
사색의 이마가 별처럼 빛나, 나는
초록빛 희망이라고
초록빛 사랑이라고
초록빛 슬픔이라고 쓴다
새벽이 오면
상처 속에서도 사랑은 푸르리니
자연이여
칠흑 속에 박힌 그리움이여
화성華星의 처녀궁에서 오는
무위의 소식
푸른 파도로 파도를 밀면서 오네.

 

마지막 꽃잎

 

서쪽으로 쓸리는 쓸쓸한 꽃잎
허기진 저 새가 물고 가네
무주공산 가득 차는 풀피리 소리
자꾸만 울고 싶어 가선이 젖어
물소리 바이없이 잦아드는데
마지막 눈물에 젖은 꽃잎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막무가내 막무가내 바람이 차네.

                  

 

 

 

 

난에게

 

난은 울지 않는다
그립고 그리우면
눈물 같은 꽃을 올린다
말없는 향이 천리를 밝힐 때
천지 가득 흐르는 피리 소리여
그대 가슴속 깊은 우물에 비치는
세상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내일은 대낮에도 별이 뜬다.

 

 

 

 

한란寒蘭에게

 

난초꽃이 피었다 바람이 분다
상강 지나 산천에 불이 붙는데
가슴 깊이 푸르른 물결이 일어
뜬 마음 여며 안고 그대를 보니
굽이굽이 서리는 설레임으로
온 세상 가득 채운 볼 붉은 풀꽃
난초꽃이 피었다 바람이 맑다.

 

 

난초꽃 한 송이 벌다

 

처서가 찾아왔습니다 그대가 반생을 비운 자리에 난초
꽃 한 송이 소리없이 날아와 가득히 피어납니다 많은
세월을 버리고 버린 물소리 고요 속에 소심素心 한 송
이 속살빛으로 속살대며 피어납니다 청산가리 한 덩이
가슴에 품고 밤새도록 달려간다 한들 우리가 꽃나라에
정말 닿을 수 있겠으랴만,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피고 지면서
목숨은 피어나는데 ……,

참 깊은 그대의 수심水深
하늘못이네.

우리가 본시부터
물이고 흙이고 바람이 아니었던가
또는 불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물빛과 하늘빛 속에는 불빛도 피어나 황토빛
내음까지 실렸습니다 올해에도 여지없이 처서가 돌아
와 산천초목들이 숨소리를 거르는데 늦꽃 소심 한 송
이 피어 깊이깊이 가슴에 들어와 안깁니다.

푸르르르르 백옥 같은 몸을 떨며 부비며 난초꽃 한 송
이 아프게 피었습니다.

 

 

지는 꽃을 보며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 속 빈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 난 사진은 http://blog.daum. net/jib17에서 옮기고 시는 졸시집《愛蘭》(1998)에서 옮겨 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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