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詩人들』1987~1999

우이동詩人들 / 이성부(시인)

洪 海 里 2012. 5. 25. 11:23

우이동詩人

- 이성부 詩人의 山이야기

 

  북한산 산자락을 끼고 있는 동네는 많다. 이 여러 동네 가운데서도 특히 우이동에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많이 살고 있어 주목을 끌게 한다. 80년대 중반 이곳에 사는 시인

5명(이생진 신갑선 채희문 홍해리 임보)이 동인회를 결성하고 87년 봄부터《牛耳洞》

이라는 시동인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들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우이동의 한 카페에서 시낭송회를 열어왔다.

현재까지《牛耳洞》시동인지는 11집을 발간했으며 시낭송회는 50여 회를 기록하고 있다.

한 동네에 사는 시인들의 단순한 친목 모임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운동, 또는 산악문화

운동으로 평가할 만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산의 말씀으로 살라 하고

나무의 말없음과 바위의 무거움 배우라 한다

맑은 물소리, 바람소리

배불리 먹으라 한다

 

--- 중 략 ---

 

그리 하여 나무가 되고 바위가 되고

산이 되어 하늘을 이면

내게서도 물소리 바람소리가 날까

오늘도 문을 나서며 너를 올려다보고

집에 들며 또 한 번 바라보노니

 

--- 중 략 ---

 

산이여 사랑이여 북한산이여

우리들 혼을 푸는 크나큰 말씀

등이 휘도록 산천초목 지고 가는

그대에게 아침 저녁 길을 물으며

못난 시인 다섯 시늉하며 따라가네.

                    - 합작시「북한산」부분

 

  이 시는 우이동 시동인 5명이 쓴 합작시「북한산」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동인들 모두

20여 년 동안 북한산 기슭에서 살아왔으므로, 북한산은 곧 이들에게 삶의 한 부분이자 시심의

원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산은 이들 시인에게 '우리들 모두 혼을 푸는 크나큰 말씀'

이며, '아침 저녁 길을 묻는' 대상으로까지 자리잡혀 있다. 북한산의 절대적 가치가 이들로

하여금 우이동에 붙박혀 살게 하고, 시동인, 시낭송 운동을 벌이게 했으며, 이같은 삶을 긍지로

여기게끔 만든 것이다.

  "20여년 동안 우이동 산골짜기에 살며 자주 만나게 돼 자연스럽게 시동인을 이루게 됐어요.

한 동네 사람들이라선지 맘도 잘 맞고 이상하게 기질도 엇비슷해서 이젠 그냥 가족 같고 형제

같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골짜기 골짜기를 누비며 산행도 하고 시를 나눠

읽기도 해요. 북한산은 20년을 한결같이 오르내리고 했지만 산행 때마다 새로운 맛이 나는

신비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우이동에서만 살아오는 이유는 북한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70년대부터

한창 강남 개발이다, 아파트붐이다 해서, 너도 나도 강남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이들은

우이동 골짜기를 떠날 수가 없었다. 북한산을 거기 그대로 두고 떠나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강남으로 떠난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를 몇 번 옮겨다니면서 크게 재산을 불렸다고도

했다. 그들은 우이동을 고수하는 이 시인들을 가리켜 '석기시대 사람들'이라도 불렀다. 그러나

가난한들 어떠 하며 어리석은들 어떠 하랴. 이들은 모두 자기자신의 세속적 초라함을 북한산에

의지하여, 정신적으로 넉넉하게 보상받고 또 위안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50대의 중견시인들이다. 한국시단에서 각각 독특한 자기 목소리와 개성을 지닌

시인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동인시집《우이동》을 펴낼 때마다 다섯 사람이 함께 집필하는

합작시 한 편을 싣는다.

  같은 테마를 가지고, 각각의 심상과 정서에 따라 기승전결 형태로 시를 전개시켜 맺어가는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사람이 썼는데도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호흡이 잘 맞고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북한산의 정기를 함께 받아 시상을 가다듬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우이동의 1천년 된 은행나무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우이동 시인들과

주민들, 교수들이 은행나무 살리기 대동제와 촛불시위를 벌여, 베어질 뻔한 은행나무를 가까스로

살려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이동이 '먹고 마시는 유원지가 아리라 서울의 문화 1번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한국일보 1992. 7. 16.(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