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책갈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홍석민 기자

洪 海 里 2012. 8. 30. 06:1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洪錫珉

 

요즘 국민들 심사가 영 편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쏟아지는 일본의 망언과 망동 시리즈 때문이다. 내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으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격앙된다. 하기야 어찌 나랏일뿐이랴. 상대방의 몰상식과 생떼 탓에 속을 썩는 일은 개인의 일상사에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감정에 충실한 대응은 받은 대로 갚아 주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식이다. 구약 성경에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破傷)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레위기 24장 19∼20절)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된 대응법이다.

성경에 나온 건 율법의 한 구절이지만 실제 전략으로도 유용하다. 1970년대 말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놓고 승률을 겨루는 대회에서 ‘팃 포 탯(Tit for tat)’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우승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방과 협력할 것인가, 배신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했는데 상대방의 배신에는 배신, 협력에는 협력으로 돌려준다는 단순한 전략을 앞세웠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그렇다면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국제 사회에 주장하자. 부산에서 50km밖에 안 떨어져 있어 물리적인 거리도 일본에서보다 가깝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내놓는 것보다 대마도가 한국 땅임을 입증할 사료(史料)가 훨씬 많다. 실제로 2005년 경남 마산시가 ‘대마도의 날’ 조례를 공포하기도 했다.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제정한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하면서 주민등록도 옮겨 가자. 생각만 해도 속이 후련하지 않은가.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지난달 초 국내에서 열린 ‘아시아 온라인 쇼핑 비전 콘퍼런스’에서 일본의 한 TV홈쇼핑 대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국의 한 홈쇼핑업체를 견학하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불고기를 팔면서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 줬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홈쇼핑으로 불고기를 팔 때 용량, 가격, 원산지, g당 가격 같은 정보를 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홈쇼핑 방송의 시청률은 0.1%에 훨씬 못 미친다. 채널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시청자의 구매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야말로 쉽지 않은 설득 작업이다. 이럴 때 한국은 감정에 호소하는 반면 일본은 철저하게 숫자와 근거를 들이댄다.

문제는 독도를 둘러싼 게임의 룰이 드라이한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일본에 익숙한 방식이다. 우리가 “이런 나쁜…” 수준의 대응을 하고 있다면 일본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팃 포 탯’ 프로그램은 전략을 공개한 뒤 치러진 두 번째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세상에서 천하무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승부를 반복해 승률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단판 승부라면 ‘팃 포 탯’ 프로그램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감정의 발현이 아니라 치밀하게 세운 전략일 때 의미가 있다. 분노는 다스리고 냉정하게 수를 읽어야 한다.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일단 부글부글 끓고 보는 분이 주위에 하도 많아 하는 말이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동아일보 2012.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