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칼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법

洪 海 里 2012. 12. 28. 06:55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법

 

일을 벌이는 것보다 제대로 마무리하는 게 10배쯤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건 1년간의 미국 연수 생활을 정리할 때였다. 물론 이국땅에 처음 정착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출장을 가는 것과 가족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가벼운 옷가지만 들고 갔기에 숟가락 하나까지 모두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구하는 것보다 내려놓는 게 훨씬 어려웠다. 전기, 수도, 신문, 인터넷, TV 같은 서비스는 신청하는 것보다 해지하고 예치금을 돌려받는 게 더 번거로웠다. 돈을 들여 구입한 세간은 통째로 넘겨받기로 한 분이 막판에 취소하는 바람에 귀국을 열흘쯤 남기고 하나하나 인터넷에 올려 팔아야 했다.

돌아와서 지인들에게 미국에서의 1년을 사람의 한 평생에 빗대 이야기하곤 했다. 1년을 84세의 삶이라고 보면 1개월은 7년 꼴이다. 첫 달(0∼7세)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주변 도움으로 생활하다 3개월(21세)쯤 지나면 돌아가는 사정을 어렴풋이 알게 되며 6개월쯤 됐을 때(40대)는 요령을 피울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새로 일을 벌이기보다 정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귀국 두 달을 남긴 시점(70세)부터는 마음이 급해졌다. 회사에 복귀하는 날짜가 진즉 정해져 있는데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삶은 반복되고 도돌이표가 붙은 것처럼 새해가 오지만 2012년이라는 특정한 해는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매 1년은 연수의 1년처럼 모두 특별하다.

한 해를 제대로 마무리하는 팁 같은 게 없을까 찾다가 ‘잉크(Inc)’ 매거진에 실린 글을 발견했다. 필자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케빈 돔 씨. 매년 12월을 ‘단절(disconnect)’ 기간으로 정하고 훌쩍 여행을 떠났던 그는 올해 ‘R’로 시작하는 5가지를 실천하겠다고 적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 해를 복기하는(Reflect) 것이다. 그해 최고의 성취를 이룬 사례를 5가지 꼽아 본 뒤 어떤 행동 패턴이 뒷받침돼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더 좋은 것은 거꾸로 5가지 실패 사례를 적어 보고 어떻게 하면 되풀이하지 않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머지 네 가지는 중요한 사람에게 다시 연락하기(Reconnect), 이미지 전환(Reposition), 휴식(Relax), 도움이 되는 사람 끌어오기(Recruit) 등이다.

돔 씨의 조언은 연말을 흥청망청 보내지 않고 새해에 자신의 경력과 성과를 높이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활용하려 할 때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언보다 앞선 원칙은 일을 시작하고 실행할 때 마무리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매사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가볍게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돌이켜 보면 미국 생활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건 그만큼 삶이 무거웠다는 뜻이다. 고작 1년인데 공짜로 줘도 미련이 남지 않는 세간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는 연말연시에 자주 연주되는 곡 가운데 하나다. 그 가운데 합창곡인 ‘저 하늘은 주의 영광 나타내고’를 들으며 눈을 감아 본다. 이 순간에도 광대한 우주에선 뭇별이 엄숙한 침묵 속에 제자리를 지키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돌고 있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엄중하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동아일보 2012. 12. 28.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