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錫珉 기자 칼럼

사회적 기업가 김정현

洪 海 里 2012. 10. 31. 06:48

사회적 기업가 김정현

 

보청기를 만드는 딜라이트의 김정현 대표(26)는 요즘 주목받는 청년 기업인이다. 총선 때 새누리당 청년 비례대표 후보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얼마 전 안철수 후보의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는 아직 대학생이고 딜라이트는 2010년 설립된 신생 업체다. 그런데도 이처럼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딜라이트는 시장원리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볼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청기 지원금액인 34만 원에 맞춰 제품을 판매한다. 사실상 공짜로 보청기를 보급하는 셈이다. 국내 난청 환자는 2009년에 40만 명 가까이 됐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보청기 착용률은 7.5%에 불과했다. 저가 모델도 평균 70만 원에 이르는 가격은 대부분의 난청 환자들에게 부담스러웠다.

저가 보청기를 앞세운 딜라이트는 2년 만에 수직 성장하고 있다. 창업 당시 4명이던 직원은 10월 현재 46명으로 늘었고 올해 매출액은 5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더 놀라운 점은 저가 제품을 내놓고도 영업이익률이 15%에 이른다는 점이다.

다른 사회적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면 이런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곽선화 부산대 교수(경영학부)의 연구에 따르면 2007∼2010년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491개 기업 가운데 매출액이 30억 원 이상인 곳은 7.7%(37개), 영업이익을 낸 곳은 16.1%(79개)에 그쳤다. 설립 목적은 좋지만 대부분 영세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재정 지원이 끊긴 사회적 기업들이 고용 인원의 62%를 감원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김 대표와 29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지난주에 5일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주말에 돌아왔다. 회사 일로 한 달에 한 번은 해외출장이라고 했다. 수업도 들어야 하는 학생이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았지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씩씩했다.

김 대표는 “‘돈이 없어서 보청기를 못 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보청기는 귀의 모양에 따라 다르게 만드는 맞춤형이 대부분이라 가격이 비싸다. 딜라이트는 95%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표준모델을 만들어냈고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극적으로 줄였다. 딜라이트가 제품 혁신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자 경쟁사들도 지금껏 거들떠보지 않던 저가 보청기를 내놓기 시작했다. 한 기업의 혁신이 생태계를 바꿔놓았고 이용자 편익을 늘린 성공 사례다.

김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소셜 벤처를 지원하기 위한 벤처 캐피털을 만들었다. 5억 원을 출자한 뒤 아이디어를 선별해 2000만∼7000만 원씩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회적 기업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에 청년 기업인은 많다. 김 대표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건 단순히 경영 성과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젊은 나이에 사회적 약자에게 눈을 돌렸고 혁신을 통해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래퍼를 꿈꾸던 평범한 소년은 이제 ‘빈곤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이 기성 정치판에서 휘둘리거나 변질되지 않고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홍석민 산업부 차장 smhong@donga.com(동아일보 2012. 10. 31.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