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洪海里 선생의 시와 매화

洪 海 里 2013. 2. 8. 04:43

 

 

 

한림공원의 매화 소식을 접하고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차를 몰고 다녀왔다.

 

오가며 2시간, 사진 찍기 1시간 반, 도합 3시간 30분을 투자해서

매화와 수선화 실컷 보고 왔다.

 

이른 것은 벌써 1주일 전쯤부터 피기 시작했고 늦은 것은 아직도 작은 봉오리로 있다.

 

그 중 요묘한 색의 매화를 골라 홍해리 선생님의 매화 시편과 함께 올린다.  

 

 

♧ 매화 피면 / 洪海里

 

하늘을 열기 위해

우주를 삼킨

네 눈에 모은 빛으로.

 

이 겨울

우리의 빈혈을

다수웁게 덥히면.

 

은은히 들려오는

피리소리

천상에서 내리고,

 

마주하고

나누는

넉넉한 달빛으로,

 

자기잔에

넘치는

마알간 술빛,

 

허기로

달래보는

이 계절의 위안이여! 

 

 

♧ 매화梅花 / 洪海里

 

 

7. 8월

매화는

임신 중

 

입덧을 하느라

잎이

말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빛도 말려

 

언 눈 속

이른 봄

잔치는 잔치

 

삼복에

부른 배

기미가 피어

 

말린 잎

흔들다

잠이 든 고요.   

 

  

일지매一枝梅 / 洪海里

 

몇 해 동안

 

매화 가지에 세들어 살던

 

미라붕어

 

챙그랑 챙강 울 때마다

 

한겨울에도 매화 피니

 

내 일이란 내일 아닌 오늘

 

욜랑욜랑 노는 일.

 

 

 

♧ 매화 피면 2 / 洪海里

 

 

매화 피면 찬 하늘에 피리소리

 

가슴속에 절을 짓고 달빛을 맞네

 

달빛 젖어 흔들리는 빛나는 소멸

 

피리 구멍마다 맨살의 무지개 피네.

 

 

  

 

매화, 눈뜨다 / 洪海里

 

 

국립4·19민주묘지

더디 오는 4월을 기다리는 수십 그루 매화나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다

지난여름 삼복 염천의 기운으로 맺은 꽃망울

4월이 오는 길목에서

그날의 함성처럼 이제 막 터지려 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심상찮다

그날 젊은이들도 이랬으리라

지금은 관음觀音 문향聞香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벌들처럼

무심하게 걸음을 재촉하며 헤매고 있다

한 시인 있어

막 터뜨리는 꽃망울을 보며

절창이야, 절창이야, 꽃을 읊고 있다

연못가 버드나무도 연둣빛 물이 올라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때 되면 철새처럼 몰려와 고갤 조아리고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새대가리들

그날의 핏빛 뜨거운 함성은 들리지 않고

총선이 다가온 거리마다

떠덜새인 직박구리처럼 떼 지어 수다를 떨고 있다

나라를 구하라[求國]는 듯

먼 산에서 산비둘기 구국구국 구슬피 울고 있다.

 

 

 

 

♧ 매화나무 책 베고 눕다 / 洪海里

 

겨우내 성찰한 걸 수화로 던지던 성자 매화나무

초록의 새장이 되어 온몸을 내어 주었다

새벽 참새 떼가 재재거리며 수다를 떨다 가고

아침 까치 몇 마리 방문해 구화가 요란하더니

나무 속에 몸을 감춘 새 한 마리

끼역끼역, 찌익찌익, 찌릭찌릭! 신호를 보낸다

‘다 소용없다, 하릴없다!’ 는 뜻인가

내 귀는 오독으로 멀리 트여 황홀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데

고요의 바다를 항해하는 한 잎의 배

죄 되지 않을까 문득 하늘을 본다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입술들, 혓바닥들

천의 방언으로 천지가 팽팽하다, 푸르다

나무의 심장은 은백색 영혼의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언어의 자궁인 푸른 잎들

땡볕이 좋다고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파다하니 뱉는 언어가 금방 고갈되었는지

적막이 낭자하게 나무를 감싸안는다

아직까지 매달려 있는 탱탱한 열매 몇 알

적멸로 씻은 말 몇 마디 풀어내려는지

푸른 혓바닥을 열심히 날름대고 있다

바람의 말, 비의 말, 빛의 말들

호리고 감치는 품이 말끔하다 했는데

눈물에 젖었다 말랐는지 제법 가락이 붙었다.

 

그때,

바로 뒷산에서 휘파람새가 화려하게 울고

우체부 아저씨가 다녀가셨다

전신마취를 한 듯한, 적요로운, 오후 3시. 

 

 

 

 

♧ 매화에 풍경 달다 / 洪海里

 

 

거저듣는 새소리 고마워

매화 가지에 방울을 걸어 주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바람이 그윽한 화엄의 경을 펼친다

매화의 분홍빛 눈은 이미 감겨지고

연둣빛 귀를 파릇파릇 열고 있다

 

매화에 없는 악보를 풍경치듯

하나 하나 옮겨놓고 있는

붕어가 콕콕 쪼고 톡톡 치며

하늘의 노래를 시나브로 풀어 놓고 있다

 

바람이 물고기를 타고 춤을 추는

매화 사타구니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가지마다 많은 열매가 달리겠지요

올해는 매실이 더욱 튼실하겠지요.

 

 

 

 

매화꽃 피고 지고 / 洪海里

 

심학규가 왕비인 딸 청이 앞에서

눈을 끔쩍끔쩍하다 번쩍 세상을 보듯

매화나무가 겨우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천 등 만 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가지마다 암향暗香맑고 푸르다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내뿜는 기운으로

어질어질 어질머리가 났다

계집이 죽었는지

자식이 죽었는지

뒷산에서 구성지게 울어 쌓는 멧비둘기

봄날이 나울나울 기울고 있다

시인은 매화꽃이 두근두근댄다고 했다

꽃 터지는 소리가 그만 절창이라고 했다

한 사내를 사랑한 여인의 가슴이

삼복三伏 염천炎天이어서

두향이는 죽어서도 천년

매화꽃 싸늘하게 피우고 있다.

 

 

 

* http://blog.daum.net/jib17 / 홍매 겹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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