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꽃시집『금감초롱』
문병란(시인)
한가을 둥근달
맑은 빛살로
바느질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밤 도와 마름하여
첫날밤 지샌
새댁
정화수
앞에 놓고
두 손 모으다
바람도 자는데
바르르
떠는
하늘빛 고운 울음
영원 같은 거
엷은 고요
무봉천의無縫天衣 한 자락
홀로 맑은
지상의 한 뼘 자리
젖빛 향기 속
선녀 하강하다.
-「소심 개화素心開花」전문
꽃의 형이상학, 옥양목 적삼처럼 해맑은 민족 정서를 우려낸 꽃. 여백의 미도 살리면서
꽃이 아닌 마음의 꽃을 곱게 형상화한 시.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상사화」첫머리
상사가 지나치면 병이 되지만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새로운 해석이 산뜻하고, 흔해 빠진 감상이 없어 정갈하고
막걸리 한잔에 가슴 따숩던/ 어둡고 춥던 육십년대/
술 마셔주고 안주 비워 주는 일로/ 밥벌이하던 시절이 있었지//
---중 략 ---
아무데서나 구름처럼 피어나는/ 서럽고 치사스런 정분이/
집나간 며느래 대신/ 손자들 달걀 프라이나 부치고 있는가.
-「개망초꽃」
서민들의 애환을 대신하는 흔하나 정겨운 꽃. 농부들 쉬어보는
길섶에서도 너는 하얗게 웃었지. 읽다가 사백님 시집 보내준 우정 고마워서
증답서 대신 시감상 적었습니다.
1
초롱꽃은 해마다 곱게 피어서
금강경을 푸르게 설법하는데
쇠북은 언제 울어 네게 닿을까
내 귀는 언제 열려 너를 품을까.
2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금강초롱」전문
7.5조 요적 자유시. 가락도 좋거니와 우리말의 맵시도 금강초롱
그 꽃처럼 곱살합니다.
Ⅰ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위를
가고 있는 사람
모든 길이 눈 속으로 사라지고
길이 없는 이승을
홀로서 가는
쓸쓸한,
쓸쓸한 등이 보인다.
Ⅱ
진초록 보석으로 날개를 달고
눈을 감고 눈을 뜬다
만 가지 시름이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장 지순한 발바닥이 젖어 있다
내장산 비자림 딸깍다릴 지날 때에도
영원은 고요로이 잠들어 있었거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투명한 이른 봄날 이른 아침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여인女人의 중심中心
실한 무게의 남근男根이 하늘에 걸려 있다.
-「난꽃이 피면」전문
'태백산맥' 10권을 필사하여 작자에게 기증한 열혈 애독자아 있다고
사진과 함께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긴 대하장편은 필사할
의사가 없지만(다른 일이 많아서 못함) 그러나좋은 시집을 공것으로
기증받았으니 몇 편의 시라도 깊이 음미하고 싶었습니다.
사백님, 매달 책 만드시고 또 시집 계속 펴내시고 건강, 건필 거듭 찬미합니다.
이 흉흉하고 어려운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꽃시로써 우리의 마음을 맑혀
주시니 우리들 시인이나 독자로선 경사 중의 경사라 생각합니다.
'우리詩 시인선'이 이 땅이 맑아질 때까지 항상 건재하길 기원합니다.
(201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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