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꽃시집 ‘금강초롱’과 산국

洪 海 里 2014. 11. 4. 10:26

 

모처럼 통오름과 독자봉에서

산국(山菊)을 만나고 와서

 

이 꽃과 어느 시를 올릴까

한참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홍해리 선생님의 꽃시집

‘금강초롱’이 생각나

 

시집을 펴들고

꽃 이름이 안 나오는 시를 골라

같이 올려본다. 

 

 

♧ 눈부신 슬픔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는

 

보일락말락한 날개 같은 저 꽃들

하늘하늘 눈부신 저 허망함으로

꽃자리마다 비우고 나면

또 얼마나 아픈 상처만 남을 것이랴

 

그 흔적이 지워지기까지는

또 얼마나 곡두의 눈물만 흐를 것인가,

꽃들은 순수하기 위하여 옷을 벗고

영원하기 위하여 날개옷을 버리느니

 

이제 푸른 감옥에 갇혀

수인의 고통을 감수하리라

아아,

눈부신 슬픔이여!

   

 

♧ 개화(開花)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들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뼈만 남은 가지마다

폭발하는,

 

오오, 저 푸른 화약(花藥) 내!

   

 

♧ 꽃피는 밤 창가에서

 

창은 기억의 꽃이 피는 항구

기억이 소유하는 그리운 사람들이

의식의 까마귀를 날리며

무시로 목선을 타고 출항한다

암흑의 바다 위로

사상의 골편들이 무겁게 떠오르는

영혼은 하늘 가득 날아갔다가

언제나 자유를 노래하며 돌아온다

바람이 뽀얀 배꼽을 내놓고

영혼의 안경을 닦고 있으면

의식의 내면으로 흐르는 물결 따라

꽃은 화안히 대낮처럼 열린다

신들은 돌다리 밑에서 미역감으며

값싼 철학으로 영혼의 피부를

끝없이 문지르고 있다

항아리는 어둠의 여울목에서

무게 많은 감정의 달을 잉태하고

그 차가운 달 측면의 감촉으로

가슴을 여는 밤구름

깊은 사유의 중간 쯤

나의 방황은 태동을 느낀다

   

 

♧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 헌화가

 

그대는 어디서

오셨나요.

그윽히 바윗가에 피어 있는 꽃

봄 먹어 짙붉게 타오르는

춘삼월 두견새 뒷산에 울어

그대는 냇가에 발 담그고

먼 하늘만 바라다보셨나요

바위병풍 둘러친

천 길 바닷가 철쭉꽃

바닷속에 흔들리는 걸

그대는 하늘만 바라다보고

볼 붉혀 그윽히 웃으셨나요

꽃 꺾어 받자온 하이얀 손

떨려 옴은 당신의 한 말씀 탓

그대는 진분홍 가슴만 열고.

   

 

♧ 지는 꽃에게 묻다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 꽃 지는 날

 

마음에 마음 하나

겹치는 것도 버거워라

 

누가 갔길래

그 자리 꽃이 지는지

 

그림자에 꽃잎 하나

내려앉아도

 

곡비 같은 여자 하나

흔들리고 있네.

   

 

♧ 지는 꽃을 보며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서산에 해는 지고 밤이 밀려와

 

새들도 둥지 찾아 돌아가는데

 

가슴속 빈 자리를 채울 길 없어

 

지는 꽃 바라보며 홀로 섰느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다고

 

외롭다 외롭다고 울고 있느냐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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