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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없어도 조용한 발길 끊이지 않는 샛노란 봄마을

洪 海 里 2016. 1. 2. 20:58

축제 없어도 조용한 발길 끊이지 않는 샛노란 봄마을

2011-04-01 03:00:00

 

구례 산수유마을 꽃그늘 걷기


일송정의 고등어쌈밥.




산수유 노란 꽃대궐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맵고 알싸한 봄바람을 맞으며 우르르 떼지어 돋아난다. 가슴 속 활활 타오르던 천불이 차고 넘쳐, 마침내 울컥 토해낸 열꽃 덩어리들. 산수유꽃은 향기가 없다. 색깔이 진해야 벌과 나비의 눈길을 끌 수 있다. 산수유꽃은 꽃판 하나에 수십개의 꽃이 구슬처럼 달려 있다. ‘노란 좁쌀꽃 덩어리’ 같다. 구례=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홍해리의 ‘아름다운 남루’에서>》

산수유나무는 남루하다. 누덕누덕 낡은 껍질이 부스스하다. 뱀 허물처럼 너덜너덜 벗겨진다. 껍질 부스러기가 부얼부얼하다. 지저분하고 깡마르다. 도대체 그 말라빠진 가지에서 어떻게 그런 꽃을 토해냈을까. 검버섯 덕지덕지 핀 가지에서 어떻게 화르르 노란 별꽃을 매달았을까.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노란 열꽃’. 밤새 신열에 들뜨다가 마침내 게워낸 노란 쇳물. “투욱∼ 툭!” 한번은 겉 꽃이 열리는 소리, 두 번째는 속 꽃이 피는 소리. 산수유 노란 별꽃은 가슴 속 용광로에서 울컥울컥 토해낸 토사물이다. 노란 좁쌀알이다.

 


들판 한가운데 금가락지처럼 둥글게 호박돌담장(2.5m)으로 둘러싸인 곡전재.

 

전남 구례 지리산 만복대(1437m) 아래는 온통 ‘노란 파스텔 세상’이다. 수백 년 묵은 산수유나무가 일제히 꽃을 터뜨리고 있다. 어찔어찔 꽃 멀미에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저 멀리 지리산 노고단(1507m)이 하얀 눈 모자를 쓰고 있다.

산수유는 꽃이 먼저고, 잎은 나중에 핀다. 별과자 모양의 꽃판 하나에 15∼20개의 꽃이 좁쌀처럼 달려 있다. 꽃말은 ‘지속 불변’.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이다. 산수유 꽃은 향이 없다.

시냇물을 따라 상위마을, 하위마을, 반곡마을, 대음마을, 대양마을, 중동마을, 상관마을이 산수유 꽃그늘 아래 숨어 있다. 동네 고샅은 아늑한 돌담길이다. 늙은 산수유나무들은 돌밭에 갈퀴뿌리를 박고 있다. 시냇물 너럭바위에선 너도나도 사진 찍느라고 바쁘다. 그 위로 아지랑이가 꼬물꼬물 올라간다.


운조루 뒤 텃밭에 활짝 핀 매화꽃.
뒷짐 지고 이 골목 저 골짜기 어슬렁거린다. 알싸한 봄바람이 달다. 시냇물은 산수유꽃 터널 사이로 졸졸 흐른다. 주인 없는 돌담 안엔 붉은 동백꽃이 살짝 입을 벌리고 있다. 밭두렁엔 연초록 풀들이 살랑거린다. 마을 뒤편에선 쏴아! 쏴아! 맑은 대숲 바람 소리가 들린다. 뒤란 장독대 매화꽃 향기가 은은하다.

구례 산수유꽃은 이제 막 겉 꽃을 피웠다. 요즘엔 속 꽃이 떼 지어 우우 눈을 뜨고 있다. 꽃이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피었다. 4월 초순이면 절정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해마다 열리던 산수유축제도 건너뛰었다. 광양 매화꽃축제도 마찬가지다. 모두 구제역 탓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산수유꽃은 아랫마을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보는 게 좋다. 가장 늦게 피는 상위마을을 맨 나중에 봐야 깨소금 맛이다. 반곡마을과 대음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내 한가운데 너럭바위가 있다. 바위 양편 시냇가에 노란 꽃다발이 머리채를 통째로 늘어뜨리고 있다. 사이사이 버들강아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운조루(雲鳥樓)의 나무쌀독.

붉은 점선 안을 확대한 오른쪽은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이 쌀독 마개를 풀어 쌀을 가져 가라’는 뜻의 他人能解(타인능해) 글씨.

 

산수유꽃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촌스럽다. 노랗게 달아오르다 식어버린 노란 쇳물 같다. 하지만 멀리서 무더기로 핀 ‘산수유꽃 떼’를 보면 앙증맞고 깜찍하다.

구례는 매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중 화엄사 흑매를 으뜸으로 친다.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있는 300∼400년 된 홍매를 말한다. 너무 붉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돌아 ‘흑매(黑梅)’로 불린다. 4월 10일은 지나야 꽃망울을 터뜨릴 것으로 보여 사진작가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길상암 연못가 대숲의 백매(천연기념물 485호)는 은은하고 강한 향기가 일품이다. 역시 아직 일러 피지 않았다.

운조루 뒤뜰의 백매, 곡전재 안뜰의 홍매, 매천사 입구 백매도 볼 만하다. 운조루는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99칸(현존 73칸) 집이다. 운조루(雲鳥樓)는 ‘구름 위 새가 사는 집’이란 뜻. 남한 3대 길지의 하나인 이곳 금가락지 명당에 지어졌다. 앞에는 너른 들판이 있고 들판 너머엔 다섯 봉우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운조루는 각종 민란과 동학, 여순사건, 6·25전쟁 등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았다. 그것은 명문가 문화 류(柳)씨의 ‘더불어 베풀며 사는 정신’ 때문. 쌀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나무 독에 쌀을 가득 채운 뒤,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도록 한 것이다. 지금도 그 나무 독이 남아 있다. 독 아래쪽엔 ‘他人能解(타인능해)’라고 써 있는 마개가 있다. ‘그 누구라도 필요하면 마개를 풀어 쌀을 가져 가라’는 뜻이다.

운조루 부근에 있는 곡전재도 가볼 만하다. 들판 한가운데 2.5m 높이의 호박돌담장으로 빙 둘러싸인 한옥이 특이하다. 역시 금가락지 명당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안뜰에 100년이 넘은 홍매가 화르르 꽃을 틔우고 있다.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아우르고 있다. 산과 강에 꽃들이 무더기로 핀다. 요즘 섬진강 주변은 매화꽃 천지다. 구례에서 30분쯤 달리면 광양매화마을이 있다. 19번 도로를 타고 하동 쪽으로 가다보면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악양 들’이 나온다.

▼산수유꽃과 닮은 생강나무꽃깵 꽃잎 수 - 줄기 모양 달라▼


가느다란 가지 끝에 매달린 산수유꽃(위)과 가지에 바짝 붙어 핀 몽글몽글 생강나무꽃.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흡사하다. 언뜻 보면 같은 꽃 같다. 우선 둘 다 노란 꽃이다. 이른 봄 같은 시기에 잎보다 먼저 피는 것도 똑같다. 꽃이 모두 자잘하고 앙증맞다. 꽃이 둘 다 우산살처럼 사방으로 고루 퍼져 매달린다. 보통 사람이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두 나무는 집안부터 완전히 다르다.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무과이고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이다. 산수유나무 줄기껍질은 너덜너덜 잘 벗겨져 지저분하다. 마른버짐이 잔뜩 핀 얼굴 같다. 생강나무 줄기는 매끄럽다. 산수유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서 피지만, 생강나무는 암꽃나무와 수꽃나무가 따로 있다. 열매 맺는 나무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산수유 꽃잎은 4장이고, 생강나무 꽃잎은 5장이다.

산수유꽃은 가느다랗게 뻗은 가지 끝에 오종종 매달려 있다. 생강나무꽃은 꽃줄기 없이 가지에 바짝 붙어 핀다. 산수유꽃은 노란 좁쌀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양이다. 작은 구슬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생강나무꽃은 몽글몽글하다. 고깔수술처럼 부슬부슬한 느낌이다. 꽃봉오리 끝이 뭉툭하다. 영락없는 ‘꼬마 황매화 꽃’이다.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열매를 보면 확연히 다르다. 산수유나무 열매는 빨간 타원형이지만, 생강나무 열매는 검은 원형이다. 산수유 열매는 식은 땀 흘리는 사람에게 좋다. 간과 신장 보호에도 효과적이다. 빈뇨증이나 야뇨증 노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통 차나 술로 담가 마신다. 생강나무는 꽃잎 가지에서 맵싸한 생강냄새가 난다. 달여서 먹으면 뼈에 이롭다. 알싸하고 신맛이 뒤섞여있다. 멍들고 삐거나 상처 입은 데 효과적이다. 산후조리에도 좋다. 까만 열매는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처럼 머릿기름으로 쓰기도 했다. 강원도에선 아예 ‘산동박나무’라고 부른다.

산수유나무는 궁궐 왕릉 가정집 정원의 단골 관상수이다. 따뜻하고 물이 잘 빠지는 땅을 좋아한다. 햇살이 잘 비치는 언덕이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잘 자란다. 생강나무는 전국 어느 산이든지 다 있다. 날씨가 추운 중부이북 지방에서 잘 큰다. 햇볕보다는 반그늘이나 음지를 좋아한다.

▼“고향 떠나는 사람도 산수유나무는 팔지 않고 가요”▼
상위마을 산수유할아버지 구형근 씨




상위마을 구형근 씨(74·사진)는 ‘산수유할아버지’로 통한다. 구 할아버지는 태어나서 군대 3년 빼놓곤 단 한번도 산수유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무려 36년 동안(1962∼1998) 마을이장을 하며 산수유와 함께 살아왔다. 현재 이장도 구 할아버지의 아들이 대를 이어 하고 있을 정도.

“우리 마을은 지리산 만복대 자락 밑에 터 잡은 지 600여 년이나 되는 동네입니다. 한때 100여 가구가 넘었지만 지금은 26가구에 60여 명이 살고 있지요. 한 집에 적게는 수백 그루, 많게는 수천 그루 산수유나무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시냇가나 길가 혹은 밭둑길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듯 보이지만 그 어떤 나무든 주인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하천은 나라 것이지만 산수유나무는 개인 것이지요.”

상위마을 산수유나무 중 100년 넘은 것은 얼추 잡아 2만5000∼3만 그루. 한 집에 보통 1000∼2000그루를 가지고 있다. 도시로 이사 간 사람도 산수유나무는 거의 팔지 않는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수확하러 온다. 못 딸 것 같으면 일찌감치 풋 산수유가 달려있을 때 열매만 팔아치우는 사람도 있다. 이사 때 산수유나무 한 그루 값은 보통 20만∼50만 원 정도 친다.

올 산수유 시세는 말린 것 1kg에 5만 원 선이다. 지난해 3만 원대보다 많이 올랐다. 수확량은 작황이 좋을 땐 한 나무에 70∼80kg까지 거둔다. 올 시세로 한 나무에 350만∼4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린다는 계산이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한 나무에서 10kg도 못 따는 경우도 있다.

“옛날엔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습니다. 두세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가르칠 수 있었지요. 저도 아들 네 놈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지금은 값싼 중국산에 밀려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짭짤하다고 봐야지요. 중국산은 열매껍질이 얇고 국산은 두껍습니다. 꽃필 때 올해처럼 눈이 오면 꽃이 얼어 거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늘 농사이지요. 그래도 요즘엔 산수유 따는 기계가 나와서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mars@donga.com 김화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