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홍해리 시인의 애란시愛蘭詩

洪 海 里 2016. 3. 8. 04:45

 

어느새 봄이 되어

제주동양난회가 주최하는

제26회 난 전시회가

지난 주말에 열렸다.

 

바깥 나들이 다녀오면서

늦게야 알고

부랴부랴 달려가

꽃들과 일년만에 조우했다.

 

그 중 몇 분盆을 골라

홍해리 꽃시집 ‘금강초롱’에서 옮긴

애란시愛蘭詩와 같이 올린다.

   

 

♧ 난蘭의 전설

 

너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네 날개가 날다 지쳐 꽃이 되었다

뿌리로 변한 네 발도

하늘을 잊지 못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한여름 삼복 중에 돋기 시작한 날개

가을을 날고 겨울을 돌아

해마다 봄이 오면 솟아오른다

하늘을 잡던 네 깃이 잎이 되었다

천년만년 살고지고! 하지만

어느 천년에 사랑이 이루어지겠느냐

첫 년이면 추억도 천년이겠지만

네 가슴속엔 무엇이 들어 있어

난은 오늘도 홀로 푸른가 푸르른가.

   

 

♧ 소심 개화素心開花

 

한가을 둥근달

맑은 빛살로

바느질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밤 도와 마름하여

 

첫날밤 지샌

새댁

정화수

앞에 놓고

두 손 모으다

 

바람도 자는데

바르르

떠는

하늘빛 고운 울음

영원 같은 거

 

엷은 고요

무봉천의無縫天衣 한 자락

홀로 맑은

 

지상의 한 뼘 자리

젖빛 향기 속

선녀 하강하다.

 

 

♧ 난이여 그대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춤인가

닿을 수 없는 정갈한 정신의 벼리인가

뼈를 저며 품어야 할 교훈의 말씀인가

별의, 하늘의, 우주의 투명한 선문답禪問答인가

새벽녘 푸르게 빛 발하는 화두話頭인가

빈혈의 일상을 밝히는 중용中庸의 도道인가

한밤에 홀로 깨어 고뇌해야 할 지고선至高善인가

난바다처럼 바라보는 미립의 거울인가

정한 눈물로 맑게 씻은 단단한 꿈인가

말없이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비구比丘인가

드러내지 않는 자족自足의 예술인가

소리없이 가슴에 차는 참그린 정情의 여유인가

 

난이여 그대는?

   

 

♧ 난蘭 앞에 서면

 

천상천하의 바람도 네 앞에 오면

춤, 소리 없는 춤이 된다

시들지 않는 영혼의,

적멸의 춤이 핀다

 

별빛도 네게 내리면

초록빛 에메랄드 자수정으로

백옥으로 진주로

때로는 불꽃 핏빛 루비로 타오르고

순금이나 사파이어 또는 산호

그렇게 너는 스스로 빛나는데

 

난 앞에 서면

우리는 초라한 패배자

싸늘한 입김에 꼼짝도 못한다

언제 어디 내가 있더냐

일순의 기습에 우리는

하얗게 쓰러진다

 

천지가 고요한 시간

우리의 사유는 바위 속을 무시로 들락이고

때로는 하늘 위를 거닐기도 하지만

무심결에 우리를 강타하는

핵폭탄의 조용한 폭발!

 

드디어 우리는

멀쩡한 천치 백치……

가장 순수한 바보가 된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춤사위에 싸여

조용히 조용히 날개를 편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

'시화 및 영상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복中伏  (0) 2016.03.08
<시> 중복中伏 · 2  (0) 2016.03.08
[스크랩] 홍해리 시인의 봄꽃시  (0) 2016.03.01
[스크랩] 봄의 향기  (0) 2016.02.17
[스크랩] 홍해리 선생의 ‘치매행’  (0) 2016.01.29